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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K가 홍남기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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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정부의 2기 경제팀이 출범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직을 떠나던 10일 “1기 팀은 패러다임 전환용”이었다고 했다. 성적표는 성공보다 실패, 보람보다 좌절이었던 모양이다. “가슴에 숯검댕이(숯검정)를 안고 사는 것처럼 살았다”고 했다. ‘미스터 쓴소리’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도 학교로 돌아갔다. 그는 “경제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 정부 경제팀 내 ‘야당’으로 불렸다. 두 사람이 떠난 자리엔 예스맨만 남았다. 다음은 떠나는 두 사람이 후임에 남기는 ‘쓴소리’다. 물론 100% 가상이다.

늘공은 말로 어공 못 이겨 #정책과 숫자로 설득하라

홍남기 형. 나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팀장, K입니다. 우선 미안하단 말을 전합니다. 안 좋은 경제, 태산 같은 숙제를 남기고 떠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못난 전임이지만 꼭 세 가지만 당부하렵니다. 홍형이 익히 아는 얘기입니다.

첫째는 리더십입니다. 대통령도 홍형에게 “경제 부처 장관들과 한팀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지요. 백번 맞는 말입니다. 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관계 장관들과 자주 못 만났습니다. 허심탄회 속내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시장은 금세 눈치챘습니다. 지난해 8·2대책은 어땠습니까. 부총리가 총괄해야 할 부동산 종합대책 발표 때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청와대 김수현 사회수석이 직접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당장 ‘경제팀 엇박자’ ‘허수아비 경제 부총리’ 소리가 나왔습니다. 뒤늦게 장하성 정책실장과 사진을 찍고 “경제 사령탑은 부총리”라고 둘러댔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홍형은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마십시오. 대통령이 마침 과거 서별관 회의처럼 “경제 장관 협의체를 만들라”고 했다지요. 좋은 기회로 활용하십시오. 그렇다고 그걸로 다 되는 건 아닙니다. 정치인 출신 실세 장관들은 어쩌다 공무원, ‘어공’입니다. 우리 같은 ‘늘공’과 관심 사항이 다릅니다. 표가 되는 정책, 이념이 강한 정책을 선호합니다. 정책보다 담론에 능합니다. 늘공은 말로는 어공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념과 담론 대신, 숫자와 정책으로 말하십시오.

그렇다고 어공에 주눅 들지 마십시오. 특히 김수현 정책실장에 휘둘리면 안 됩니다. 잘 아시겠지만 김수현은 장하성 전 실장과는 다릅니다. 귀가 열려 있습니다. 게다가 김수현은 대통령의 귀도 수시로 잡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부동산과 환경은 잘 안다지만 정책 운용엔 서툽니다. 홍형은 “금요일마다 김수현과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혹여 의견이 달라도 안에서만 싸우십시오. 다투는 소리가 청와대 담장을 넘어선 안 됩니다.

둘째는 속도 조절입니다. 과속과 과욕의 풍선효과를 끝내야 합니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은 늙고 약한 사람부터 일자리를 빼앗았고 자영업자·소상공인 몰락을 부추겼습니다. 홍형은 “내년 1분기까지 최저임금 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바른 방향입니다. 하지만 더 서둘러야 합니다. 대통령은 “거시 지표는 괜찮다”고 하지만 내년엔 되레 거시지표가 더 문제일 수 있습니다. 불황형 흑자와 가계부채가 맞물려 금리 정책마저 쓰기 어렵습니다. 부동산은 거래 절벽이 시작됐습니다. 실물경제의 흐름마저 끊어놓고 있습니다. 출구 전략을 준비할 때입니다.

셋째, 여당을 잘 설득하십시오. 혁신성장의 진짜 발목은 여당이 잡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지난 8월 “데이터 규제 혁신”을 말했지만,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 3법이 여당에 막혀 이번에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내년에도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대통령 말도 안 듣는데 홍형이 나선들 잘 되겠습니까. 하지만 홍형이 해놓은 말이 있으니, 시늉은 내십시오. 나는 그렇게 못했지만, 홍형은 부디 “소신대로 할 수 없다고 직을 던지는 작은 용기 대신,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을 바치는 큰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