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당원 돌아간다" 이재명 셀프징계 그대로 받은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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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이 징계 논의는 ‘셀프 당원권 정지’로 마무리됐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12일 오전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지사가 ‘당의 단합 위해 재판 종료 전까지 모든 당직을 내려놓겠다’는 입장을 전화로 밝혀왔다”며 “당원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당의 단합 위해 이를 수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최고위원 간의 논의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아무쪼록 모든 당원이 일치단결해 우리는 한 팀이란 마음으로 당이 분열되지 않도록 마음을 잘 모아달라”며 “재판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 지사는 전날 오후 11시 40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소로 논란이 있지만, 이 문제로 인해 우리 당이 ‘원팀 정신’이 흔들려선 안 된다. 당이 단합을 위해 필요할 때까지 모든 당직을 내려놓고 평당원으로 돌아가 당원의 의무에만 충실하겠다”고 썼다. 이 대표가 최고위원에서 한 발언은 사실상 이 지사의 페이스북 글을 그대로 인용한 셈이다.

이 지사가 맡은 당직은 중앙당 당무위원·중앙위원·대의원과 경기도당 상무위원이다. 모두 경기지사로서 맡게 되는 당연직이라 따로 직위를 내려놓거나 할 성질이 아니다. “평당원으로 돌아가 의무에만 충실하겠다”는 말의 의미도 결국 당원의 권리인 선거권·피선거권을 자발적으로 유보하겠다는 정도의 의미다. 당장 선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실질적인 효력은 없다. 이날 이 지사에 대한 민주당의 조치가 “법원의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더 두고 보자”로 해석되는 이유다.

결국 원하든, 원치 않든 민주당 입장에선 ‘이 지사 리스크’를 상당 기간 안고 갈 수밖에 없게 됐다. 유·무죄 어느 쪽으로 결과가 나오더라도 3심까지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총선은 물론이고 차기 대선 때까지 이 이슈가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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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입장에선 이미 이 지사 리스크가 작동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기준으로 민주당 지지율은 지난달 말까지 9주 연속으로 하락했는데, 그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이 지사를 둘러싼 당내 분란”으로 분석됐다.

이 지사를 둘러싼 논쟁 와중에 김경수 경남 지사와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는 것도 부담스러운 요소다. 특검이 김 지사를 불구속 기소했지만, 민주당은 징계 논의는커녕 “과도한 수사로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김 지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자 진성 친문 인사다. 당 지도부가 이 지사의 징계 문제를 유야무야 넘어간 것은 이런 배경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의 측근인 김현 제3 사무부총장은 전날 라디오에서 “(두 사람을) 함께 놓고 볼 것이다. 당 안팎에서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점을 지도부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익표 수석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재명에 김경수를 붙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전혀 별개 사안이어서 논의할 생각도 없고 이유도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16일, 김경수 경남지사가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두 번째 공판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6일, 김경수 경남지사가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두 번째 공판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골수 지지자들의 반발도 문제다. 당 지도부에 이 지사의 출당을 압박해 온 ‘문파(문재인 지지자)’들은 당 최고위의 결정이 알려지자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 “민주당은 계산을 잘 못 하고 있다” 등의 글을 올리며 반발하고 있다. 이 지사 측 지지자들도 연일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 모여 “일부 당원들이 이 지사의 당연한 항변을 문제 삼아 당 지도부에 출당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정당한 민주적 권리를 억압하고 박탈하려는 것”이라고 맞서는 등 잡음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지지자들의 이런 갈등 양상은 단순히 ‘친문 vs 비문’의 구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vs 전해철’의 경기지사 경선을 기점으로 갈등의 골이 파였다. 이때 이 지사 측에서 선거를 실무 지휘한 이가 이화영 현 경기도 평화 부지사인데, 그가 이해찬 대표의 측근이란 점을 놓고 ‘이해찬이 이재명을 지원했다’는 게 사실로 굳어졌다. 이후 지난 8월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이 지사의 거취 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시 한번 갈등이 깊어져 지금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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