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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노력의 이상과 현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민련과 전대협 등 재야단체들은 방북중인 문익환 목사가 돌아오면 전국적으로 지지·환영대회와 보고회를 열 계획인 것으로 보도되고있다.
평민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 및 여러 사회단체들이 문 목사의 방북방식을 비난하고 그 책임을 묻겠다고 나서는 판에 재야세력이 그런 행사를 계획하는 것은 결국 정국을 또다시 대결국면으로 몰아갈 것이 확실시된다.
우선 그와 같은 전망을 하면서 우려되는 것은 한국사회 내부에서 벌어질 충돌이 당사자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김일성에 의해 원격조종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의 인과관계를 냉철히 살펴볼 때 그것은 남북관계를 <합리적으로 풀어 나가려는 정부당국을 위해서나 통일문제를 현실보다 이상론을 앞세워 조급히 서두르고 있는 재야세력에 다같이 심각한 손상을 가져올게 분명하다. 재야는 성급하게 환영대회를 추진하기 전에 이 점을 신중히 숙고해야 할 것이다.
세 가지 면에서 재야세력은 현실인식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첫째, 40여 년 동안 굳어져온 남북 간의 대결구조는 이상론이나 감상주의로만 풀어질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한 조국, 한 민족, 한 핏줄인데 서로 만나 이야기하면 통일은 저절로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할 뿐 아니라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남과 북에는 엄연히 이념을 달리하는 2개의 권력집단이 자리잡고있고, 두 세대에 걸쳐 그 속에서 자라온 기득권 세력이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통일 문제는 우선 이들 사이에 의견접근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치도 나아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통일논의는 개방하되 대화의 창구는 일원화해야 된다는 것은 바로 그런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둘째, 금일성은 지금 이와 같은 권력구조 사이의 대화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를 빼돌리고 한국 내 체제비판 세력들과 우회적으로 대화를 유도함으로써 한국내부를 분열시키려는 의도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김일성이 6· 25 남침을 자행하게된 유인 중 하나가 인민군이 쳐들어오면 남한 내부에서 지지 봉기가 일어나 적화통일은 쉽게 이룰 것이라고 본 중대한 오판이었음을 알아야 된다. 문 목사의 귀환을 환영하는 행위는 김일성에게 또 한 번 그런 오판을 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셋째, 우리 사회가 추진하고 있는 민주화 개혁에 불만을 품고 있는 수구 세력에 민주화의 방향을 되돌리려할 빌미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문 목사 사건에 대한 각계의 반응을 보면 그런 반작용은 이미 상당한 영향력을 집결시키고 있다.
재야세력이 지금 계획하고 있는 문 목사 환영대회가 그대로 추진될 경우 두 세력사이의 정면대결은 불가피해질 것이고 그 결과는 재야 측의 존재이유인 통일 과 민주화개혁노력에 타격을 가져올 수 있다.
이 세 가지 논점들은 모두 이상론보다 현실주의에 휩쓸린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남북한관계가 서로의 강점과 허점을 탐색하고 있는 지금 단계에서 이런 현실 인식이야말로 대사를 그르치지 않기 위해 철저히 따져야할 것들이다.
감상주의보다는 합리주의, 이상론보다는 현실론이 더 지혜로운 상황이라는 판단아래 우리는 문 목사 환영대회와 같은 행사가 백해무익함을 재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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