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색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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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식축구 코치들은 선수들이 머무는 방의 색깔까지도 신경을 쓴다. 미국의 심리학자「R· 아른하임」에 따르면 전반전이 끝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선수들은 대개 청색으로 칠한 방에 머무른다. 이 색깔은 활동적이면서도 마음의 안정을 주어 선수들이 기력을 되찾는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사방 벽과 천장, 바닥이 온통 붉은 방에 사람을 가두고 얼마 지나면 멀쩡한 사람도 정신 이상이 된다고 한다. 적색은 그 정도로 자극적이고 홍분을 가져온다.
육당의 『조선상식문답』을 보면우리 민족은 고래로 백색을 좋아했다. 수천년 전 이미 부여사람들이 그랬고, 신라·고려·조선의왕대가 한결같이 흰옷을 입었다. 우리 선조들은 태양을 신성하게 믿어 그 상징인 백색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선 이집트, 바빌론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황색도 국기에 자주 등장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 색깔이 엄청난 충격을 자아내 『눈속을 파고든다』고 했다. 어떤 짐승은 황색을 보면 놀라서 도망가거나, 성을 낼 때도 있다. 화가 「칸딘스키」는 황색을 『날카로운 나팔소리』에 비유하기도 했다.
색채심리학자들은 모든 색상 중에서 가장 평온한 색상은 절대 녹색이라고 말한다. 「칸딘스키」는 녹색에서 『우직하게 세상을 바라보면서 끝도 없이 반추를 계속하고 있는 건강하고 살찐 요지부동의 소』를 연상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끈질긴 성격과도 같다.
1987년 현대사회연구소가 조사한 한국인의 색채반응에서 가장 좋아하는 색깔로 청색을 지적한 사람이 14%로 제일 많았다. 우리 국민의 밝고 활달한 심성을 보는 것도 같다.
「마틴· 린다우어」라는 색채학자는 세계 1백38개국의 국기를 색채별로 분석한 적이 있었다. 국기들의 평균 색깔 수는 2.14색이었다. 그중 적, 청, 황, 녹색으로 색조를 이룬 국기가 97%였다.
적색만으로 이루어진 국기도 38%나 되었다.
요즘 판문점에서 열렸던 남북체육회담에서 남북선수단일 팀의 단기에 그려 넣기로한 한반도의 색깔이 화제가 되었다. 북한측은 황색을 주장했다가 하늘색으로 수정했고, 우리는 녹색을 주장하고 있다. 어느 색이든 앞으로 남북을 상징하는 공통의 색깔로 의미를 갖게 될텐데, 전문가의 자문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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