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칩(cheap)럭셔리ㆍ수제 자동차·사내벤처 롱패딩…올해 유행한 '크라우드 펀딩' 별별템은

중앙일보

입력

‘수제 자동차’, ‘숙달 돼지’, ‘사내벤처 롱 패딩’…. 듣기만 해도 알쏭달쏭한 이 제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올 한 해 크라우드 펀딩(대중으로부터 자금조달)으로 ‘대박’을 터트린 아이템이란 점이다. 국내의 투자 심리 위축에도 불구하고 올 한해 크라우드 펀딩 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투자형 크라우드 펀드의 경우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168건이 목표 금액을 달성, 총 273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특히 11월 한 달에만 23건을 성사시키며 29억 6000만원을 조달했다. 이런 추세로라면 지난해 전체 모금액인 279억6000만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상형 크라우드 시장도 꾸준히 성장했다. 보상형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은 올해 6월 누적 후원액이 4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10월엔 500억원을 넘어섰다.

올해 투자형 크라우드 펀딩 참여 업체 중 가장 많은 자금(7억원)을 모금한 모헤닉게라지스의 수제 자동차. 이 회사는 구형 갤로퍼의 차체, 부품, 엔진, 내장 등을 완전히 재조립(리빌드)해 새로운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다. [사진 와디즈]

올해 투자형 크라우드 펀딩 참여 업체 중 가장 많은 자금(7억원)을 모금한 모헤닉게라지스의 수제 자동차. 이 회사는 구형 갤로퍼의 차체, 부품, 엔진, 내장 등을 완전히 재조립(리빌드)해 새로운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다. [사진 와디즈]

일반 대중이 업체에 대해 후원ㆍ투자하는 크라우드 펀딩은 펀딩후 물품을 받으면 보상형(후원기부형), 금전적 수익을 받으면 투자형(증권형)으로 나뉜다. 업체 입장에선 자신이 팔 물건이나 서비스에 대한 시장 반응을 미리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테스트 베드(시험대)’ 성격이 강하다. 이때문에 업계에선 크라우드 펀딩 히트작을 내년 유행할 아이템의 선행 지표로 본다.

자료 한국예탁결제원

자료 한국예탁결제원

크라우드 펀딩 유행템을 보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 ‘수제’의 인기는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투자형 크라우드 펀드 시장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모집한 곳은 ‘수제 자동차’로 알려진 ‘모헤닉게라지스’다. 이 회사는 국내 최대 투자형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와디즈를 통해 2016년 3차례에 걸쳐 펀딩에 성공한 데 이어 올해 4월에 도전해 7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앞서 펀딩받은 금액까지 합치면 14억원에 달한다. 이 회사는 구형 갤로퍼를 분해해 재조립(리빌드)해서 완제품으로 판매한다. 차량의 내·외관은 물론 부품이나 엔진까지 재조립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수제 맥주도 크라우드 펀딩 시장에서 인기를 입증했다. 지난해 제주맥주가 7억원 펀딩에 성공한데 이어 올해엔 ‘문재인 맥주’라는 별칭을 얻은 세븐브로이 양평이 약 5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크라우드 펀딩으로 조달했다. 강유정 문화평론가(강남대 교수)는 “SNS의 발달로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방식이 제품을 소비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며 “‘레어템(보기 드문 제품)’에 대한 선호가 늘면서 핸드메이드(수제) 제품, 커스터마이징(소비자 맞춤형) 제품에 대한 소비가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샤플이 보상형 클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구매자를 모집한 캐리어&백팩 제품. 나건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가 디자인했다. 샤플은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제품을 사이트에 올린 뒤 소비자의 선택을 많이 받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생산해 판매하는 회사다. [사진 와디즈]

샤플이 보상형 클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구매자를 모집한 캐리어&백팩 제품. 나건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가 디자인했다. 샤플은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제품을 사이트에 올린 뒤 소비자의 선택을 많이 받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생산해 판매하는 회사다. [사진 와디즈]

유통 과정을 줄임으로써 좋은 제품을 싸게 사는 ‘칩(cheap) 럭셔리(저렴하게 누리는 호사)’ 상품에 대한 호응도 뜨겁다. 와디즈의 보상형 크라우드 펀딩으로 500만원을 모집했는데, 역대 최고 금액(15억원)이 몰린 ‘샤플’ 캐리어와 백팩이 대표적이다. 세계 3대 디자인상인 레드닷 어워드 심사위원이자 홍익대 국제대학원 교수인 나건 교수의 디자인으로 만든 여행용 가방이다. 그런데 가격은 백팩이 2만4000원, 20인치 캐리어가 3만4000원에 불과했다(조기 구매자 기준). 훌륭한 디자인의 제품을 값싼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는 비결은 유통 과정을 생략한 데 있다. 이 회사는 홈페이지(샷플닷컴)에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제품을 올린 뒤 구매하고 싶은 제품을 추천받는다. 추천이 많은 제품을 생산한 뒤 중간 유통 단계를 생략해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판매 대금의 일부는 디자이너에게 돌아간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사내벤처팀에서 출시한 롱 패딩은 구스 다운임에도 불구하고 20만원대 가격의 제품을 선보여 2억5000만원의 후원금을 모집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사내 벤처인 플립이 출시한 구스다운 롱패딩. 2억 5000만원의 금액을 펀딩하며 시장성을 입증했다. [사진 와디즈]

신세계인터내셔날 사내 벤처인 플립이 출시한 구스다운 롱패딩. 2억 5000만원의 금액을 펀딩하며 시장성을 입증했다. [사진 와디즈]

프리이엄 식음(F&B)분야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와디즈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전체 투자형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투자한 영역은 식음 분야(26%)였다. 와디즈 관계자는 “참치회ㆍ무태장어ㆍ산양삼 등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긴 비싸고, 온라인 매장에서 사긴 품질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프리미엄 제품들이 인기를 끌었다”고 밝혔다. 또한 “스토리를 통해 누가 어디서 만드는지 상세하게 설명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이 중 ‘아이언미트’는 와디즈의 투자형 크라우드 펀드를 통해 3억9900만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돼지고기에도 R&D가 필요하다’는 슬로건으로 온라인 정육 전문점인 ‘탐육’과 프리미엄 삼겹살 전문점인 ‘숙달 돼지’ 등을 운영하는 업체다.

외식벤처기업인 아이언미트는 '구이혁명가 철든놈', '숙달(숙련된 달인) 돼지' 등의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한다. 삼겹살에 R&D(연구개발) 개념을 접목해 '프리미엄 삼겹살'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와디즈]

외식벤처기업인 아이언미트는 '구이혁명가 철든놈', '숙달(숙련된 달인) 돼지' 등의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한다. 삼겹살에 R&D(연구개발) 개념을 접목해 '프리미엄 삼겹살'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와디즈]

1인 가구의 증가 등으로 인해 반려견 등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실시간 수의사 상담 플랫폼인 ‘펫닥’은 KTB투자증권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4억9000만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텀블벅에서 진행된 프리독 팔찌에는 2516명의 후원자가 몰려 6800만원의 기금을 마련했다. 모집된 후원금은 개농장의 개를 구조하고 치료ㆍ입양하는 데 사용됐다.

동물의 권리 보호 단체인 ‘케어’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후원금을 받고 지급한 팔찌. 후원금은 개농장의 개를 구조하고, 치료와 입양하는 과정에 사용됐다. 2516명의 후원자가 6800만원을 후원했다. [사진 텀블벅]

동물의 권리 보호 단체인 ‘케어’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후원금을 받고 지급한 팔찌. 후원금은 개농장의 개를 구조하고, 치료와 입양하는 과정에 사용됐다. 2516명의 후원자가 6800만원을 후원했다. [사진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은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사거나(보상형) 투자 수익에다 연말 정산 혜택(투자형)까지 누릴 수 있어 젊은 층에 ‘재테크’로도 주목받고 있지만 유의할 점도 있다. 보상형은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판매하거나 대량 생산할 수 없어 원하는 시기에 제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또 투자형의 경우 대부분 비상장된 스타트업 업체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금 전체를 잃을 수도 있는 고위험 상품이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