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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화보 아니야?…확 바뀐 軍달력 순식간에 동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방부가 최근 자체 제작한 달력은 연예인 화보집을 연상케 한다. 2019년도 달력 각 페이지에는 훤칠한 선남선녀 장병들이 야전에서 전문 모델 못지 않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소속과 병과, 이름 등을 소개하고 키워드 뒤 짤막한 각오를 드러내기도 한다.

 ‘초석(礎石), 국군의 튼튼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또는 ‘단련(鍛鍊), 단련으로 빛나는 가장 단단한 다이아몬드’ 등의 문구가 이들의 비장한 표정과 적절히 어우러져 있다.

국방부 2019년도 달력 모델로 나선 국군 장병들. [국방부 제공]

국방부 2019년도 달력 모델로 나선 국군 장병들. [국방부 제공]

국방부 달력이 파격을 담기 시작했다. 무기와 훈련 장면 등 투박한 사진이 주를 이뤘던 군 달력이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실무자들은 “전투의 역동성을 노골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세련된 방식으로 ‘유능한 안보, 튼튼한 국방’의 의미를 표현하려 했다”고 말한다.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도 이 같은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영상물이 시리즈로 제작되거나 대국민 이벤트가 기획되는 식이다. 남북 평화 분위기 속 변화를 모색하는 군 ‘마케팅’ 전략의 결과물이다.

무기 가득하던 군 달력이 '패션화보'로 

군 달력의 형식 파괴는 2018년도 국방부 달력에서 비롯됐다. 국방부는 지난해 처음으로 배포용 달력을 준비하면서 ‘패션화보’와 같은 화려함을 선택했다. 군의 딱딱한 이미지를 최소화하고 기존 군 달력과 차별화를 꾀한다는 의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육·해·공 3군 달력과 내부용으로만 제작되던 국방부 달력에는 전투기, 탱크 등 무기 사진이 주를 이뤘다. 인물 사진이 나오긴 했지만 단체 훈련 장면이 대부분이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고민을 거듭한 결과 ‘매월 한 명의 군인을 모델로 세워 군의 다양한 전문 보직을 알리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2018년 1월 육군특전사 저격수 교관부터 2019년 1월 해군 이지스함 전탐사까지 13명의 군인이 추려졌다.

전문 사진작가가 촬영을 맡아 이들 아마추어 모델의 포즈를 프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반응은 기대이상이었다. 달력 화보를 사전에 공개한 뒤 4000부 중 500부를 페이스북 선착순 이벤트로 배포했는데 2시간만에 종료됐다.

2019년도 달력은 지난 시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군사편찬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의병전쟁과 신흥무관학교, 광복군 창설 등 각 달을 대표하는 국군의 역사적 사건을 선정하고 여기에 어울리는 장병을 뽑았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화보에 스토리를 더했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국방부 2019년도 달력 모델로 나선 국군 장병들. [국방부 제공]

국방부 2019년도 달력 모델로 나선 국군 장병들. [국방부 제공]

연합의병 서울진공작전이 펼쳐졌던 1월(1908년)은 의병의 자발적인 ‘결의’가 주제다. 해외영주권을 포기하고 입대한 탁도영 일병이 해당 장의 모델이다.

의열단이 조직된 11월(1919년) 장에는 해병대 제2수색대대 저격수 방세종 대위가 총을 겨누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는 “비밀결사조직 의열단처럼 패배를 모르는 해병대 저격수는 그 존재만으로 적에게 공포가 된다”는 설명이 붙는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론을 주장한 12월(1909년)은 육군 국제평화지원단 박성진 대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런 방식으로 육군 5개 팀, 해군 3개 팀, 공군 3개 팀, 사관학교 1개 팀 등 총 19명 장병이 모델로 나섰다.

국방부 2019년도 달력 모델로 나선 국군 장병. [국방부 제공]

국방부 2019년도 달력 모델로 나선 국군 장병. [국방부 제공]

제작 이후 홍보에도 공을 들였다. 국방부는 지난 10월 특별사진전시회 ‘대한민국 국군, 닮음을 담다’를 개최해 해당 사진을 공개한 데 이어 온라인 이벤트로 일반 배포를 진행하고 있다.

이달 4~8일 국방부 페이스북 등을 통해 국군 장병 응원 메시지를 남긴 네티즌 중 1000명을 추첨할 계획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총 3500부 중 일반 배포 1000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내부와 관계 부처 몫”이라며 “벌써 소장 문의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국방부 2019년도 달력 모델로 나선 국군 장병들. [국방부 제공]

국방부 2019년도 달력 모델로 나선 국군 장병들. [국방부 제공]

긍정적 평가만 있는 건 아니다. 군 달력이 정부가 진행하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에 동원되고 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임시정부 기념 사업이 보·혁 진영의 건국절 논란으로 번진 상황에서 군의 이런 시도가 정치적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군의 본분과 관계 없는 ‘보여주기식 행정’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군이 전투준비태세 대신 이미지 관리에 더 몰두하고 있다는 의미다.

군의 새로운 마케팅 전략은 온라인상에서도 이어졌다. 국방부 정책홍보담당관실은 지난 6월 자체적으로 영상팀을 꾸려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올리는 동영상을 시리즈물로 기획하고 있다. 과거엔 영상 홍보를 비정기적으로 외주에 맡기곤 했다.

군 홍보 영상에선 군 향한 '쓴소리'도 

영상팀은 판에 박힌 일방 홍보의 틀을 깨고 시청자 중심의 기획물을 제작하는 데 우선순위를 뒀다. 그렇게 탄생한 ‘예썰’ 시리즈의 경우 전역한 일반 병사들이 토크쇼를 진행하는 형식으로 과거와 현재의 군 생활을 비교한다.

국방부 홍보물이지만 출연자들은 제초 작업 경험담을 얘기하면서 “이제 군대도 바뀌어야 한다”는 등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영상팀 관계자는 “‘국민이 주인이다, 국방부는 들어라’라는 게 예썰의 슬로건”이라고 말했다.

격오지 장병과 주민을 찾아가 영화 상영을 하고 이를 영상으로 담은 ‘시네마’ 시리즈도 히트작이다. 지난달 14일 게시된 ‘울릉 시네마’는 페이스북에서 조회 수가 12만 건을넘어섰다. 이 밖에 군 행사의 뒷얘기를 다룬 ‘풀빵(풀버전 국방부 영상)’, 주요 정책을 실무자가 직접 설명하는 ‘만나고 싶었어요’ 시리즈도 자체 영상팀의 작품이다.

온라인 광폭 홍보가 독이 된 적도 있다. 지난달 30일 국방부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6·25 전쟁을 소개하면서 “승자도 패자도 없는 3년여의 전쟁 끝에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된 지 올해 65주년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5시간 만에 삭제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라는 문구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어 조치에 나섰다고 국방부는 해명했다.

지난 10월에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DMZ 동영상’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유해 구설에 올랐다. 해당 동영상은 통문 번호 등 군사 정보가 고스란히 노출돼 논란을 빚었다. 무비판적으로 청와대의 홍보 방향에 동참하려다 관련 논란을 확대·재생산한 셈이다.

일단 군은 이 같은 온라인 홍보 전략이 성공적이라고 자평한다. 국방부 페이스북 구독자 숫자는 지난 1년간 3만 명 가까이 늘어 현재 총 31만 명에 달한다. 정부 부처로는 청와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구독자 수를 자랑한다. 국방부 유튜브 페이지는 1년간 조회 수가 30만 건 이상 늘어 현재 누적 조회 수 250만 건을 돌파했다.

훈련 홍보는 최소화

반면 군의 전통적 홍보 분야인 훈련에서는 ‘로키(low-key)’ 기조가 뚜렷하다. 대북 평화 분위기를 위해 훈련 공개를 하지 않거나 홍보 수위를 낮추겠다는 취지다. 지난 11월 한·미 해병대 연합훈련(KMEP)은 6개월 만에 재개돼 언론의 관심이 높았지만 지난해와 달리 군은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다.

지난 10월 실시된 한·미 공군 등이 참여하는 다국적 연합 공중전투훈련 레드플래그 훈련 역시 올해 예외적으로 홍보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10월말 실시된 태극연습·호국훈련은 예고 보도자료를 낸 게 전부였다.

결과적으로 군의 새로운 마케팅 행보는 기존의 훈련 홍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등장했다. 훈련 외 소재로 군의 필요성을 친밀감 있게 설득해야 할 필요성이 새 홍보 전략으로 이어진 것이다. 군 관계자는 “평화 시대와 적의 위협이 강조되는 시대의 홍보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다”며 “그러나 여전히 국방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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