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보고만 있을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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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산불방지 비상근무 령이 펼쳐진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나 엄청난 재난을 입었다. 지난 주말만 해도 14건의 산불이 발생해 무려8명이 참변을 당하는 등 올 들어 벌써 97건에 1백50만평의 울창한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다. 얼마 전 예년에 볼 수 없었던 봄비가 듬뿍 내렸는데도 작년 1년간의 산불보다 30%나 늘었는데 앞으로 두 달간의 본격적인 건조기에는 얼마나 더 많이 발생할는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나무는 원래 조림 못지 않게 육림이 더 중요한 것인데 수십 년에 걸쳐 공들여 키운 나무를 한순간의 인재로 잿더미로 만든대서야 식목은 무의미하고 이를 회복하는데는 장구한 세월이 소요된다는 걸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산림청의 통계를 새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산불은 해마다 대형화하고 건수도 늘어나고 있다.
어린 나무만 있고 낙엽이 쌓여 있지 않았던 10여 년 전과는 달리 산불이 났다고 하면 쉽게 끌 수도 없고 피해면적이 엄청나며 산불원인도 입산 자 실화와 논·밭의 쥐불 부주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봄·여름철을 맞아 등산객들의 입산이 빈번해지면 산불 발생도 늘어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불예방과 진화문제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다 시피하고 불이 나더라도 원시적인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각 시-도에 전담기구도 없거니와 예방과 진화를 깊이 있게 다루는 연구나 장비의 개발 또는 훈련된 인적 자원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산림청 예산도 기껏해야 5억 원에 불과하고 유일한 장비라 할 헬리콥터도 11대뿐이어서 요즘처럼 한꺼번에 여러 곳에서 산불이 나면 손을 들어야 할 판이다.
이 때문에 마을주민들을 동원해 소나무가지를 꺾어 바닥을 두드려 불을 끄거나 맞 불을 붙여 불을 끄는 등 첨단기술시대에 한심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원시적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경제발전을 입으로 자랑만 할게 아니라 선진 산림 국처럼 산불 진화장비를 현대화하고 항구적인 예방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입산 자를 리스트화해 점검을 철저히 하고 무단 입산 자에 대해서는 발포 권까지 주는 서독의 경우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입산 자에 대한 감시·감독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지금처럼 산불 전담기구도 두지 않고 예산도 제대로 할당치 않을 정도로 무관심하다면 산불 재해의 급증은 막을 도리가 없다.
산불을 끄다가 마을 주민 6명이 한꺼번에 숨진 며칠 전 홍천 산불의경우도 무방비가 빚어낸 대표적인 참극이었다. 쥐불을 놓을 때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담당공무원이 반드시 임석 해야 하는 등 안전수칙을 지켜야 하는 데도 아무런 대비도 없이 논두렁을 태우다 강풍으로 불이 옮겨 붙었고 주민들이 무작정 불을 끄러 갔다가 희생됐다. 제도와 체제의 미비가 초래한 재해인 셈이다.
희생된 주민들은 물론 산 주에 대한 피해보상도 막막하다. 이번 기회에 국가의 관리소홀 과 타인의 부주의로 피해를 보는 주민과 산주 들에 대해 적절히 보상해 주는 국가산림재해보험제도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 등 외국에서는 이미 그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그로써 산림투자 의욕을 조금이나마 보호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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