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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사랑하는 부인 생각에 장미 훔친 할아버지 훈방

중앙일보

입력

꽃을 좋아하는 부인(할머니)이 생각나 장미를 훔친 70대 할아버지가 훈방 조처됐다.
세종경찰서는 "지난달 30일 '경미범죄심사위원회'를 열고 70대 할아버지의 장미꽃 절도 사건을 심사해 전원 일치 의견으로 훈방토록 결정했다"고 3일 밝혔다. 이 위원회는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낮은 경미 범죄와 취약계층의 생계형 범죄를 대상으로 민간위원도 참여해 심사하는 제도다. 경찰서장이 위원장이고 대학교수, 변호사 등이 참여한다.

부산시민공원 다솜마당 일원에서 열린 '2018 부산정원박람회'에서 시민들이 장미 정원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부산시민공원 다솜마당 일원에서 열린 '2018 부산정원박람회'에서 시민들이 장미 정원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세종시 장군면 단독주택에 부인과 단둘이 사는 강모(71)씨는 지난 11월 6일 오후 혼자 세종시 세종보 주변을 산책했다. 강씨는 산책 도중 개인이 운영하는 화원에 심겨 있던 장미 2그루를 손으로 뽑아 차에 싣던 중 현장에서 검거됐다.
강씨와 40년을 함께 살아온 부인은 6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장애까지 얻었다. 그 후유증으로 심각한 우울증과 함께 거동도 불편해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강씨가 뽑은 장미는 하필이면 할머니가 좋아하는 종류였다고 한다.

세종경찰서, 경미범죄심사위원회 열고 강모(71)씨 훈방조처 #강씨, "뇌줄중으로 쓰러진 부인 생각나 나도 모르게 훔쳤다"

강씨는 화원 주인 신고로 현장에서 검거되자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할머니가 기뻐할 것이라는 생각에 잘못을 저질렀다”며 제자리에 장미를 다시 심어 놓았다. 그는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해 누워 있는 아내가 장미를 보면 무척 좋아하며 기뻐할 것 같고, 잠시나마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장미꽃을 훔치려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집에 장미꽃을 심어 항상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할머니가 생각났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이 사연을 듣고 전원 일치로 법으로 처리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구재연 세종경찰서 생활질서계장은 "노부부의 서로 사랑하는 모습과 장미꽃을 집에 심어 할머니를 기쁘게 해주려 한 할아버지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면서 "심사위원들이 잠깐의 실수는 있었지만, 할머니를 위한 할아버지의 사랑과 장미를 바로 돌려준 점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세종=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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