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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폴러첸 "평양에 있는 느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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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는 퇴장한다. 이 같은 고성은 평양에서 듣고 처음이다."

23일 경찰청에서 열린 행정자치위 국정감사 도중 증인으로 출석한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이 목발을 짚은 채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대구 유니버시아드 폭행 사건 등의 책임 문제와 관련, 일부 의원과 증인이 이념 논쟁을 하다 국감장이 수라장으로 변하면서다.

발단은 통합신당 이강래(李康來)의원과 서정갑 예비역대령연합회장의 문답이었다. 李의원이 "지난번 '국민의 힘'의 조선일보 앞 시위에서 가스총을 쏘았는데 평소에도 갖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이에 徐회장은 "그날 따라 꿈자리가 좋지 않아 갖고 갔다"고 했다. 질문을 한 李의원이 대답을 듣고 웃었고 徐회장은 "웃을 일이 아니다"며 언짢아했다.

통합신당 송석찬(宋錫贊)의원이 다음 질문자로 나섰다. 宋의원은 徐회장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을 고발한다고 서슴없이 말하는데 도대체 통일관이 뭐냐"고 다그쳤다. 그러자 徐회장이 발끈했다. "왜 위협적으로 나오느냐. 내가 죄인이냐. 송석찬 당신이 국회의원이냐"고 고함을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곧 옆에 있는 증인들이 徐회장의 주장에 가세했고 의원들이 "진정하라"고 소리를 높이면서 국감장이 난장판이 됐다. 이 순간 폴러첸은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한 뒤 자리를 떠나버렸다.

폴러첸은 이날 국감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서울에 있으면서도 평양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변 위협도 느꼈다. 세뇌가 북한에도 있지만 한국 사회도 세뇌와 조작과 인권 무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 햇볕은 포용이라고 하지만 일련의 상황은 햇볕이라기보다 독재정권에 의한 음모정책 같다"고도 했다.

이날 국감에서 의원들과 증인들은 끊임없이 논쟁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증인들을 옹호하며 북한의 눈치를 살핀 경찰의 태도를 부각시켰다. 반면 통합신당 의원들은 "지나친 보수적 행동이 남남 갈등을 촉발시키고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북한이 원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한나라당 원유철(元裕哲)의원은 "지난 대구 유니버시아드에서 평화적인 기자회견장에 북한 기자들이 난입해 폭력을 행사했는데도 경찰이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아 폴러첸 등이 부상한 것은 직무태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강래 의원은 "반북단체의 유니버시아드 대회장 앞 기자회견은 사실상 정치집회로 볼 수 있다"며 "체육대회장 앞에서 정치적 행사를 연 것이 적절하냐"고 맞섰다.

신용호 기자 <novae@joongang.co.kr>
사진=장문기 기자 <chang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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