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윤창호법 본 윤씨 아버지 “서민들만 실형 선고 받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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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윤창호(22) 씨의 아버지 윤기현 씨. 송봉근 기자

故 윤창호(22) 씨의 아버지 윤기현 씨. 송봉근 기자

아들 윤창호(22)씨가 음주운전 차량에 사고를 당한 지 65일. 평범한 가장이었던 윤기현(54)씨는 그 사이 사회운동가처럼 변해 있었다. 말도 빨라졌다. 윤씨 입에서 437명(연간 음주운전 사고사망자), 7.3%(음주사고 가해자 중 실형 선고받은 비율), 양형위원회, 최소 형량, 법원행정처 등의 단어가 술술 나왔다. 아들 사고가 없었다면 몰랐을 숫자이고, 평생 한 번 써볼까 말까한 단어들이다. 음주운전 처벌 강화법인 일명 ‘윤창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된 지난 29일 오후 3시 윤씨를 인터뷰했다.

윤기현씨 “국회의원들, 음주운전 사망 남일로 여겨" #대법 양형위원회가 '집유 없는 최소 3년형' 정해주길

윤창호법으로 불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 개정안은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하게 한 경우 법정형을 현행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서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상향 조정한다. 최소 형량이 3년으로 높아졌지만 ‘윤창호법’ 원안은 5년 이상으로 규정했다. 5년 이상은 고의에 의한 살인죄에 해당하는 최소 형량으로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다. 집행유예는 징역 3년 이하까지 가능하다.

지난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64회 국회(정기회) 제13차 본회의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 이른바 윤창호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임현동 기자

지난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64회 국회(정기회) 제13차 본회의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 이른바 윤창호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임현동 기자

윤씨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그는 “원안 그대로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고, 국민 법 감정도 최소 형량 5년 이상을 원했다”며 “국회의원이 진정성을 갖고 윤창호법 원안을 봤는지 의심스럽다”며 분노했다.

국회의원이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남 일처럼 여기는 탓에 원안보다 후퇴한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윤씨는 말한다. 그는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발에 흙 안 묻히는 국회의원에게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남의 일”이라며 “선거철에 서민 코스프레를 할 뿐 진심으로 서민들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창호법 원안을 만든 9명의 친구에게는 기성세대로서 면목이 없다고 했다. 윤씨는 “창호 친구들이 30일 넘게 차가운 병원 바닥에 앉아서 판례와 해외사례를 뒤져가며 법안을 만들었다”며 “친구들이 밥상을 다 차려서 숟가락으로 떠줬는데 국회의원은 반찬이 많다, 적다 하는 꼴”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개정된 특가법은 서민들만 실형을 선고받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게 윤씨의 주장이다. 그는 “징역 3년 이하는 집행유예가 가능하다. 고위층은 비싼 변호사를 선임해 최소 형량인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이라며 “돈 없는 서민들만 실형을 선고받을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부산 국군병원에서 열린 윤창호씨 영결식에 참석한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오른쪽)이 윤씨 아버지를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부산 국군병원에서 열린 윤창호씨 영결식에 참석한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오른쪽)이 윤씨 아버지를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사위는 다른 우발적 범죄와의 형량 형평성 때문에 최소 형량을 낮췄다는 입장이다. 이에 윤씨는 “법사위는 음주 차량 운전자는 살인의 고의성이 없다고 봤지만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은 것 자체가 고의성이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개정된 특가법은 윤창호씨의 가해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윤씨가 법 개정에 매진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창호 친구 말로는 창호가 죽기 4달 전에 음주운전 형량이 너무 낮다는 말을 했다더라”며 “더는 창호와 같은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음주운전 문화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연간 437명이 사망한다. 창호보다 더 안타까운 437개의 사연이 있다”며 “음주운전은 살인행위라는 인식이 자리 잡힐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음주운전 피해자 故윤창호 군의 친구 김민진 양이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음주운전 피해자 故윤창호 군의 친구 김민진 양이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씨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고 했다. 그는 “양형위원회가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집행유예 없는 최소 형량 3년’이라는 조건을 달아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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