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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독도 위안부와는 차원 다른 사태,양국 관계 유지도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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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새우나 (독도가 그려진)한반도기 문제, 국회의원의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이름)상륙 등 그동안 있어온 미래지향에 반하는 행위들,위안부 합의 문제 등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양국 관계를 유지하는 것 조차 어려울 수 있는 사태다."

"국제법 위반을 넘어 법적 기반 완전히 뒤집어" # 미쓰비시 "일본정부와 연락 취하며 대응할 것" #日 "한국 정부, 절대로 시간 끌려 해선 안돼"

29일 대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징용 배상을 명령하자 일본 정부가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이날 오후 5시가 넘어 기자들 앞에 선 고노 다로(河野太郎)외상은 평소 보다 더욱 격앙된 표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강경 발언에 대한 한국측의 반발을 의식한 듯 "(대법원 징용 판결은) 일본 외상의 발언이 너무 강경한가 강경하지 않은가(를 논의할) 레벨의 이야기가 아니라"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양국 관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한국이 국교정상화 이후의 근본적인 법적 기반을 뒤집고도 아직까지 아무런 시정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걸 우려할 수 밖에 없다"며 "신속하게 (65년 청구권 협정 위반을)시정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견지해온 입장대로 이번에도 '청구권은 65년 협정으로 해결됐고, 일본에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빨리 발표하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일본은 앞으로도 양국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며 "그러나 한국이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청구권 협정에 기초한)양국간 협의나 (제3자에 의한)중재 절차, 국제사법재판소(ICJ) 등 에 호소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평소 그는 고노 담화를 발표했던 아버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전 관방장관에 대한 언급을 꺼린다.
하지만 이날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발표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조부와 아버지와도 오랫동안 친분이 있었다"며 "내가 외상을 맡아 양국간의 새로운 관계를 진전시키려는 그 순간에 이런 일이 생겨 유감스럽고 분하다"고도 했다.

앞서 그는 대법원의 판결 직후인 오전 10시 30분쯤 ‘외무 대신 담화’도 발표했다.

고노 다로 외상 [사진=지지통신 제공]

고노 다로 외상 [사진=지지통신 제공]

담화에서 그는 “청구권 문제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을 규정한 65년 청구권 협정에 명백하게 반해 일본 기업에 한층 부당한 불이익을 지울 뿐 아니라, 65년 국교정상화 이후 구축해온 양국 우호협력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뒤집는 것”이라며 “극히 유감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제법 위반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시정을 포함해 한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재차 강하게 요구한다”며 “적절한 조치가 강구되지 않을 경우 국제 재판과 대항조치를 포함한 모든 선택지를 염두에 두고 의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30일 신일철주금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때와 대동소이한 내용이었다.
한달 전과 마찬가지로 ‘청구권 문제의 완전하고 최종적 해결’이란 문구가 포함돼 있는 65년 청구권 협정 2조의 조문도 담화에 첨부됐다.

일본 외무성의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사무차관은 이수훈 주일한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이번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항의했다.

이 대사는 외무성을 나서며 기자들에게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전달받았고, 우리 정부의 입장도 설명했다"고 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고노 외상의 담화와 비슷한 취지로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연합뉴스]

피고인 미쓰비시중공업은 판결에 대해 "청구권 협정 등에 반하는 것으로 극히 유감이다. (일본)정부와 함께 연락을 취하며 적절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3~4차례의 설명회를 통해 기업들이 개별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도록 단속을 해왔다.

일본 정부는 특히 ‘한국측의 적절한 조치’를 계속 강조하고 있다.

현재 이낙연 총리 등 국무총리실이 중심이 돼 정리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입장 발표와 대응을 일단 지켜보겠지만 어떠한 경우든 일본에게 배상의 짐을 지우는 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현재 일본 정부의 태도다.

이 문제에 정통한 일본측 소식통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일본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국내여론과 일본 정부 사이에서 한국 정부가 눈치를 보면서 계속 시간을 끄는 게 일본 정부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외무성 북동아시아1과(한국과)를 중심으로 꾸려진 ‘일한청구권관련문제대책실’에서 관련 대책을 짜고 있다.

15명 안팎의 규모의 조직으로, 본래 한국과에 소속돼 있던 인원을 뺀 나머지 추가 인원은 국제법 관련 부서에서 차출됐다고 한다.

국제사법재판소(ICJ)에의 제소를 포함해 일본정부가 국제법적인 대응조치를 주로 검토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한편 서울을 방문중인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게이단렌 회장은 징용 판결과 관련해 "일본측에서 보면 놀랄 내용"이라며 "어떦게든 (경제협력 등에)악영향이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불안정한 국제환경에서 양국 관계가 중요한 만큼 미래지향에 역행하지 않도록 관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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