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광주사태」는 단계적 쿠데타 일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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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워싱턴=연합】「글라이스틴」전 주한 미 대사와「위컴」전주한미군사령관은『12·12사태와 광주 강경 진압 조치는 전두환씨를 비롯한 신 군부의 단계적 쿠데타의 일환』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최근 발표된 한 미학자의 논문에서 밝혀졌다.
이들 사태가 발생했던 79년과 80년 당시 한국 내 미국 최고 관리들이었던 이들은 최근 간행된 웨스트 뷰 출판사의 광주사태 논문집에 수록된 『광주사건과 미국』의 필자「마크·피터슨」교수(브리검영대 극동문화연구소)와 지난 87년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주장하고『미국은 12·12사태 직후 역 쿠데타 가능성을 검토했으나 전두환 그룹이 이미 군 부내에 확고한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있어 역 쿠데타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글라이스틴」전 대사는 이 인터뷰에서 『광주사태 당시 미국은 평화적 해결을 거듭 촉구하는 한편 미 정부의 성명서를 방송하고 유인물을 공중 살포토록 계엄당국에 요구했다』고 말하고『한국군부가 이를 약속하고도 어겼으며 한국군부는 오히려 미국이 군부의 강경 진압조치를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왜곡된 정보를 흘렸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12. 12 이전에 이미 쿠데타 설이 파다하게 돌았으며 이를 당시 한국군 수뇌부에 알리고 경고했으나 한국군 수뇌부는 이를 무시했다』면서『12· 12 당일 노재현 국방장관 등 당시 미 8군사령부 벙커에 있던 한국군 수뇌부가 처음에는 대항병력출동조치를 취했으나 「위컴」사령관이 이를 제지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은 쿠데타에 대비한 비상 대응책을 세워 놓았으며 12·12 당일 밤 워싱턴으로부터 쿠데타군에 원대복귀 명령을 내리라는 메시지를 받았으나 5·16 당시와 같이 쿠데타 세력의 반발만을 사는 쓸모 없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한국군 내부 동향과 쿠데타 추이를 지켜보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한편「피터슨」교수는 이 논문에서「글라이스틴」전 대사와「위컴」전 사령관은 모두 12·12 쿠데타를 지지할 의사가 없었다고 밝히면서 그러나 전두환씨가 당초 민간정부의 막후 실력자로 남으려던 생각을 버리고 직접 권력장악에 나선 데는「위컴」사령관이 80년 8월초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한국군부 지도자가 선거를 통해 정통성을 확보할 경우 미국은 이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피터슨」교수는 또「위컴」전 사령관이 12·12직후 수감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전두환 장군의 반대를 무릅쓰고 생일 축하카드를 보냈으며 결국 이것이 정 총장의 구명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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