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터널」로 달리는 지하철|제정갑<사회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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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청와대로 가자.』
「3·16전면파업」을 재확인하는 지하철 노조원 전체회의가 13일 낮 서울 용답동 노조사무실 앞마당에서 열렸다.
노조원들은 고건 서울시장 등의 화형식을 벌인데 이어 노태우 대통령의 지하철 분규 강력 대응 발언을 규탄하기 위해 정윤광 노조위원장의 제의로 경복궁 앞 역으로 지하철을 타고 몰려갔다.
합의각서 이행을 요구조건으로 내세운 지하철 노조의 농성·파업 예고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계속 증폭, 급기야「정권규탄」으로 까지 비화하면서 파업강행을 예상케 하는 가운데서 총련 등 여타단체가 연대투쟁을 벌일 것을 천명하고 나서 이번 분규는 4월부터 본격화될 올해 임금투쟁의 시금석으로 기업·노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지하철 노조는 이같이 대내외적으로 주목되고 있는 분규를 계속하면서 과연 그들의 요구가 명분이 있느냐는 데 강한 이의가 많아 시민들로부터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노조는 8일 서울시장 주재로 열린 협상에서 서명형식 문제로 타협을 결렬시킨 뒤 △서울시장의 보증서명 △김명년 사장의 퇴진 △구속된 배일도 전노조위원장의 석방 △노조간부에 대한 고소취하 등을 추가 요구하고 이같은 사항이 15일까지 수용되지 않으면 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먼저 서울시장 보증서명은 노동법 상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노동법의 단체협약당사자는 노사대표이며 감독기관이라 하더라도 이를 대행할 수 없어 시장의 보증서명은 법적 효력이 없는 형식 행위일 뿐이다.
또 김 사장 퇴진문제와 배전 위원장 석방문제는 인사권자인 고 시장에 일임하거나 사법문제이므로 추후 협의하기로 잠정 합의한 상태다.
노조가 이같은「주장」으로 지하철 파업이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춘투를 앞두고 연계투정을 통해 시국의 주도권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반면 서울시에 대해서도 시민들은『과연 파업을 감수할 만큼 시장의 보증서명이 불가능한 것이냐』는 의문을 품고 있다.
어쨌든 노·사 모두 시민을 볼모로 명분 없는 싸움을 계속할 경우 더 이상 시민의 용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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