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에서 '왕따'도 학교폭력"…법원이 제시한 기준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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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생인 A에게 지난해 5~6월 학교생활은 지옥에 가까웠다. 같은 반 동급생 B와 말다툼을 하다 사이가 틀어진 게 화근이었다. 그 이후로 B와 어울려 지내는 학생들이 A에 대해 공공연하게 무시하거나 험담하기 시작했다.

괴롭힘은 교실 밖에서도 이어졌다. A를 따돌리는 분위기를 눈치챈 교사가 가해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자 해당 반의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 “그 애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들은 카카오톡 채팅을 통해 A에 대한 조롱과 험담을 한 달 넘게 이어갔고, 이런 분위기에 동조해 A에게 다가가지 않는 학생도 늘어났다.
반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A는 급식을 먹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베란다에서 뛰어내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학교폭력 관련 사진. [중앙포토]

학교폭력 관련 사진. [중앙포토]

상황이 심각해지자 학교 측은 자치위원회를 열어 서면 사과와 사회봉사 5일, 특별 교육 5일 등의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A의 어머니는 ”딸이 정신적 충격으로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왕따’ 주도 학생에 대한 강제전학 등 더 엄중한 조치를 요구했다. 학교는 올해 4월 가해 학생들에게 출석정지 10일의 추가 징계를 내렸다.

그러자 가해 학생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A가 먼저 친구들을 무시하고 험담하는 등 따돌림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였다. 또 이미 사회봉사 등을 이행했는데 추가 징계를 내리는 건 가혹하다며 출석정지 징계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한 달 넘게 카톡으로 따돌림, 당사자에겐 심한 고통”

사건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 이성용)는 "가해 학생들이 받은 추가 징계가 정당하다"고 지난 9일 판결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가해 학생들이 단순히 A와 어울리지 않는 걸 넘어 해당 학생을 적극적으로 조롱하고 무시하거나 험담했고, 이런 행동이 한 달 이상 계획되면서 다른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며 A가 학급에서 고립되면서 받은 심리적 고통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설령 피해 학생이 먼저 따돌림의 원인을 제공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인 따돌림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위 판결에 드러난 학교폭력의 정도가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봤다.

이 부장판사의 말처럼 ‘사이버 폭력’으로 인한 피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지난 9월  충북 제천에서는 한 여고생이 집단 괴롭힘을 이기지 못해 건물 옥상에서 투신해 숨지는 일이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같은 학교 선배와 친구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숨진 학생에 대한 거짓 소문을 만들어내거나, 욕설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달 인천에서도 여중생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경찰은 “해당 학생이 페이스북 등에 자신에 대한 비난글들이 올라오자 이를 비관한 게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카톡 험담할 수도 있지” 법정 다툼도 늘어…“대책 강화해야”

학교폭력 사건에서 '사이버 괴롭힘'이 늘고 있지만, 정작 가해 학생들은 이를 폭력으로 납득하지 못해 법정에서 다투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학교폭력 사건에서 '사이버 괴롭힘'이 늘고 있지만, 정작 가해 학생들은 이를 폭력으로 납득하지 못해 법정에서 다투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교실에서의 폭력은 온라인 상으로 옮겨오는 추세다. 교육부의 ‘2018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ㆍ중ㆍ고생 사이에서 사이버 괴롭힘(전체 10.8%)이 신체폭행(10.0%)보다 더 많아졌다.

학교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법정으로 넘어오는 사건도 많아졌다.
최근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특정 학생에 대한 험담이 오간 게 ‘학교폭력’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가려달라며 가해 학생이 법원에 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 학생은 교내 자치위에서 학교봉사 4시간, 심리치료 3시간의 징계를 받았지만 납득할 수 없다며 징계를 취소해 달라고 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부장 김정만)는 피해 학생이 욕설이 오간 채팅방에 속해있지 않았다는 점을 들며 “명예훼손ㆍ모욕적 발언이 있었더라도 처음부터 피해 학생이 이를 인식할 수 없어 어떠한 피해나 고통을 입을 가능성이 없었다면 학교폭력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가해 학생에 대한 징계 처분의 효력도 정지됐다.

탁경국 변호사(법무법인 공존)는 “‘오프라인 학폭’에 대한 대책은 어느 정도 만들어졌지만, 이후 은밀하고 교묘한 방식의 폭력이 늘어났다”며 “온라인 폭력에 대한 기준이 애매해 법정까지 넘어와 다투는 상황이다. 충분한 예방교육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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