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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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 중국과 소련의 한인사회가 TV에 자주 소개되면서 가장 감동을 주는 장면은 그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이다.
「아리랑」은 이처럼 고향의 노래, 민족의 노래로 우리 겨레의 가슴속에 뜨겁게 살아 있다.
「아리랑」을「살아 있는 노래」라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아리랑」은 일제와 싸우던 우국지사들에겐 항일의 노래가 되었고, 독립군에겐 군가가 되었으며, 광복된 조국에서는 해방의 노래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아리랑」은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겐 권 농가이며 국제시합이 있는 경기장에서는 응원가 또는 승리의 노래가 되기도 했다.
우리의 근대사-현대사를 통틀어「아리랑」은 이처럼 겨레가 기쁠 때나 슬플 때 언제나 그 현장에서 불려진 민족의 노래였다.
한민족의 대표적 구전민요중 하나인 이「아리랑」이 언제, 어디서부터 불려졌는지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 다만 고래로부터 조금씩 첨가, 개조되면서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만은 틀림없다.
「아리랑」의 어원에 관해서도 연구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밀양부사의 딸과 관련된 아랑설,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 때 나왔다는 아이농설 또는 아리랑 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부인과 관련된 알영세 등 16가지나 된다.
또「아리랑」의 가사는 시대상도 잘 보여준다. 『정선아리랑』은 조선 건국초기 고려충신들의 암울한 기분을「만수산 먹구름」으로 표현했는가 하면 개화기에는「석재 베치마를 둘렀을망정 네까짓 하이칼라는 눈 밑에 든다」고 당시의 세태를 풍자하기도 했다.
한 연구가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아리랑」의 종류는 무려 54종이나 된다. 여기에『한오백년』이나 『원산 아리랑』과 같은 이형을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그뿐 아니라 「아리랑」은 유명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을 포함하여 영화(11편), 연극(11편), 방송드라마(7편), 무용(7편)등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져 그야말로 민족의 서정을 노래하기도 했다.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해 9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체육회담에서는「아리랑」을 단일 팀의 단가로 하는데 일치를 보았다. 민족의 노래「아리랑」은 이제 분단된 조국을 다시 이어주는 촉매구실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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