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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민주노총, 기득권 집착 벗어나 일자리와 씨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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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민주노총. 대한민국 대표 노동조합이다. 조합원은 한국노총보다 적지만 사업장 규모와 산업적 지위에서 보면 영향력은 으뜸이다. 한국노총 조합원 84만1000명은 2395개 노조에 분산됐지만, 민주노총 64만9000 조합원은 368개 조직에 집중돼 있다.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을 포함하는 금속노조, 공공부문 대표 조직 코레일 노조와 전교조가 대표 선수다.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 지키려고 #사회적 대화 참여 거부는 이기적 #노조 위해서도 사회적 대화 참여 #일자리 대안 모색하는 건 불가피

진보 노동운동을 지향하는 민주노총의 뿌리는 해방기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에 닿아 있으나 직접적 기원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다. 87년 하반기 노동자 투쟁은 약 5200개의 신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를 토대로 제조업 노조 협의체 ‘전노협’과 사무직 조직 ‘업종회의’가 만들어졌고 이들을 중심으로 약 42만 조합원의 민주노총이 탄생했다. 95년 11월의 일이니 23년이 지났다.

조직 이후 민주노총은 법외 노조였다.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이 있었으나 실질적 향유는 제한되던 시절이었다. 노동운동은 투쟁과 투옥을 각오하는 비장한 사회운동 영역이었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을 마다치 않는 투쟁으로 민주노총은 노동운동의 대표 선수이자 정치·사회 민주화 전위대로서 역할을 해 왔다.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출범 4년 만에 합법화됐다.

시민권을 획득한 뒤 민주노총은 사회·경제 및 정치 영역에서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했고 영향을 확대했다. 민주노총에 기반을 둔 진보 정당이 탄생했고, 그 안팎에서 활동하는 국회의원과 다수 정치인을 배출했다. 청와대 등 정부 각 부처와 공공 영역에서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 특히 진보 정부 내 영향은 어떤 사회조직과 비교해도 막강하다.

이렇듯 23년 격랑 속에서 노동계급 권익 보호와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역할을 한 민주노총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65만 조합원 다수가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일하고, 평균 이상의 임금과 기업 복지를 누리며, 합당한 사유가 없는 한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는 처지라 부러움의 대상임에도 자신들의 기득권에 생기는 상처와 손해를 감수하는 데는 인색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교섭의 장에 참여를 거부한 채 탄력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확대를 이유로 총파업에 나서는가 하면, 현 정부 ‘유일’의 대규모 직접 투자 사업인 광주형 일자리 프로젝트도 파업으로 위협하고 있다.

시론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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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대화의 장을 거부하는 노동조합의 전략은 이해하기 어렵다. 노동조합이 권익을 추구하는 주요 수단이 교섭인데 이를 부정하고 남는 수단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과거 광장에서 투쟁하던 시절엔 정부와 사용자 모두 민주노총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노조의 시민적 권리 승인에도 인색했다. 그때는 자리 하나 얻으려 애썼건만 이제는 판 깔고 환영해도 거부하는 상황이니 아이러니다.

더 큰 문제는 자기 기득권 보호를 위한 다수의 정부 위원회 자리는 지키면서 사회적 대화 기구 참여는 거부하는 행태다. 민주노총은 현재 여러 정부 위원회와 회의체에 노동계를 대표해 참여하고 있지만 수년째 사회적 대화 기구 참여는 소극적이다. 사회적 대화 기구에 들어가 봐야 양보할 일만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면 극단적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사회적 대화 기구는 중장기 구조 개혁과 근본적 사회·경제 시스템 전환을 모색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민주노총이 빠진 채 일자리와 비정규직 문제 나아가 산업 구조조정이 논의된들 이행을 담보하기 어렵다. 유산(流産) 직전의 광주형 일자리 논란 이면에 민주노총의 참여 거부와 반대가 있다.

이제라도 차가운 광장에서 노동계급 권익 보호를 위해 투쟁했던 열정과 에너지로 경제 위기와 일자리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십 수년간 중국 6개, 인도 2개, 미국·체코·터키·러시아·브라질 등에 각 한 개씩 생산 공장을 만들었다. 그 사이 국내에 새로 건설된 공장은 하나도 없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의 해외 공장 생산 비중은 65%를 넘었다. 그 아래에서 하청 부품업체들은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 총근로시간 단축 및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숨이 차는데 자동차산업이 위험 산업으로 분류돼 은행 대출마저 막히는 상황이 되었다.

민주노총이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여기 있다. 노조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도 사회적 대화 참여와 일자리 대안 모색은 불가피하다. 노동조합의 기본 기능이 조직 유지 및 확대인데 일자리가 생겨야 조합원이 느는 것은 자명한 이치 아닌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조합원의 평균 연령이 50세를 훌쩍 넘겼고, 10년 내 떠나게 될 이들 뒤에 지금의 일자리가 남아 있으리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민주노총이 고민해야 할 문제는 상생의 연대 전략이며 씨름해야 할 대상은 ‘일자리’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