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개 사가 자존심 걸고 "증설경쟁"|시멘트 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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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시멘트업체들은 시설 늘리기 경쟁에 바쁘다.
이에 따라 1위의 쌍룡에서부터 9위의 유니온까지 고정되어 있다시피 하던 시멘트업계의 판도 변화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맨 처음 기존 업계순위에 대해 도전장을 낸 곳은 한라시멘트.
연간 1백19만t의 생산능력으로 7위에 랭크되어 있던 한라가 3배가 넘는 연산 3백63만t 증설계획을 선언하면서 이 같은 파란은 시작됐다.
이어 5위의 현대시멘트도 3백63만t을 증설, 90년 말까지는 연간 생산능력을 6백53만t으로 확대하겠다고 나섰다.

<세계 5위로 도약>
이렇게 될 경우 생산능력은 현대가 2위로, 한라가 3위로 껑충 뛰어오르게 된다.
그러자 2위인 동양시멘트와 3, 4의인 성신양회·한일시멘트도 이전까지만 해도 계획에도 없던 증설을 부랴부랴 서두르게 됐다.
자존심 싸움이 된 셈이다. 이 결과 2월말 현재 증설계획에 따라 시설발주를 마친 곳만도 동양·한일·현대·아세아·한라 등 5개 사이며, 나머지 회사들도 빠짐없이 기존시설을 개체 하거나 증설을 위한 시설발주를 추진 중에 있다.
이들 5개 사의 생산능력 확대로만 내년 말에는 연산 1천4백55만t의 추가생산이 가능해져 시멘트업계의 생산능력은 현재의 2천9백86만t에서 무려 50%가 늘어난 4천4백40만t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증설계획을 마무리지은 이들 5개 사외에 다른 메이커들도 증설을 계획하고 있어 늦어도 91년부터는 현재의 능력과 맞먹는 2천5백만t이 더 생산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대로 라면 세계 11위이던 우리 시멘트 생산능력은 중국·소련·미국·일본에 이어 5위로 도약하게 된다.
우리보다 생산시설·규모가 큰 이탈리아·인도·브라질·서독·스페인·프랑스를 추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세계 상위랭크 사실자체가 반가운 일이 아니라는데 있다.
환영할 일이기는커녕 짐만 되고 결국에는 시멘트산업 전체를 부실화시킬 우려마저 안고 있다. 자존심 싸움이 업계 전체를 좀먹고, 더 나아가서는 모두가 파국으로 치달을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멘트라는 게 수출상품으로서의 가치가 거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무겁고 부피는 큰데 반해 단가는 상대적으로 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수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시멘트산업이 장치산업이어서 1년 내내 일정 율의 가동을 지속해야 되기 때문입니다.』한국 양회 공업협회 송건삼 부장의 설명이다.
지금도 시설을 늘릴 수 없어 생산을 해 남는 물량을 내다 팔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업계가 너나 할 것 없이 시설을 늘리겠다고 나선 것은 87년을 전후해「반짝」활 황을 맞고 있기 때문.
올림픽 특수와 양대 선거공약 사업이 증설을 부추긴 기폭제가 됐다.
또 앞으로 늘어날 복지수요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게 증설을 서두르고 있는 업계의 주장이다. 92년까지 2백만 가구의 주택건설이 이뤄질 전망이고 고속도로를 포함, 각종 도로와 항만건설 등 이 잇따라 시멘트 수요가 급증하리라는 기대를 낳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업계의 주장이 주먹구구식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복지수요에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미국과 일본의 경우 1인당 시멘트 소비량이 7백40kg을 피크로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견주어 볼 때 우리의 현재 1인당 소비량은 4백90kg정도여서 앞으로 성장여지가 충분히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인당 소비량을 최고 9백kg으로 쳐도 연산 3천6백만t이면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시설증설은 과당경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성장여지는 충 분>
멀리 내다보지 않아도 사양화가 뻔한데 엉뚱한 이유 때문에 사활을 건 싸움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호간에 제살 깎아 먹기 식인 가격경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0년대 가격경쟁 끝에 쓰러져 75년 쌍룡 양회에 흡수된 대한양회와 법정관리로까지 치달았던 동양시멘트의 교훈을 새기고 있는 셈이다.
또 시멘트에만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고 나름대로 경영 다각화를 꾀하고 있는 일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특히 이들이 선택한 업종이 대부분 남들보다 한발 앞선 미래산업이어서 부실화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선두주자인 쌍룡은 세라믹 분야에 진출, 이미 상당한 실적을 올리고 있으며, 레저 쪽에도 손을 대 쌍룡건설로부터 인수한 용평리조트를 종합레저타운으로 키우기 위해 콘도미니엄과 스키장의 대폭확장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미래산업에 손대>
동양은 가스 기기와 증권·보험 등 금융 쪽에 손을 뻗친 데 이어 가전 부문 참여를 위해 연구소 기능을 확충하고 있다. 동양은 92년을 가전 부문 매출규모 1천억 원으로 잡아 놓고 있는데 계획대로라면 시멘트의 매출비중이 96%에서 70%선으로 낮아지게 된다.
성신은 자동차부품 메이커인 코리아 스파이서를 인수, 시멘트의 비중을 낮추고 있다.
또 73년 일찌감치 인도네시아에 철강·압연공장을 설립, 업종다변화를 시도한 한일은 레저 쪽에도 진출해 과천 서울대공원의 서울랜드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아세아는 국제그룹으로부터 인수한 국제제지를 본격 육성하기 위해 청원에 짓고 있는 일산 5백t규모의 공장이 마무리 단계에 있고, 첨단제품인 반도체 마스크의 생산을 위해 미국의 매크로 LSI사와 기술도입계약을 체결, 92년부터는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대도 86년에 설립한 서한정기의 생산품목을 기존 자동차브레이크 계통의 주물생산에서 자동차부품 가공까지 넓혀 그 영역을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현대는 또 용접봉·카바이드 등을 생산하는 현대 종합 금속과 서비스업체인 현대 종합 상운의 사업영역도 확대해 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이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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