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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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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방현 기자 중앙일보 내셔널부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이 법은 청와대와 국회 등 헌법기관 대부분을 충남 연기군 일대(세종시)로 옮기는 내용을 담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수도 이전 프로젝트였다. 위헌 결정은 충청에 날벼락이었다. 수도 이전은 본래 취지인 국가 균형발전과는 별개로 지역을 위해 놓칠 수 없는 메가톤급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충청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대규모 상경 시위 등 거센 저항이 예상됐지만 큰 소란은 없었다. 간헐적인 집회와 규탄 성명 정도였다. 오히려 영호남에서 “우리 같으면 난리 날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때 충청 스타일(기질)이 새삼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충청 스타일은 ‘일이 생기면 의견을 잘 표현하지 않고 혼자 고민하다 끝난다. 또 누가 어떤 일을 추진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정작 본인은 움직이지 않는다’로 요약할 수 있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세력을 모으는 영호남 스타일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충청 스타일은 최근에도 진면목을 보였다. 지난 9일 마감한 ‘국회 분원을 세종시에 설치해 주세요!’라는 국민청원에서다. 동의자 수는 1만명을 넘었지만 지역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충청권이 공동 캠페인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으나, 그뿐이었다. 여기에는 세종시가 충청권 인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 깔렸지만, 충청 스타일이 작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충청 스타일은 조선 중기 이후 고착화했다고 한다(김태명 『대전학총론』). 송시열(1607~1689) 등 충청 인물이 당시 국정을 장악한 노론(老論)의 핵심이 되면서 주로 충청에 양반 문화가 정착했다고 한다. 양반 문화의 요체는 “부화뇌동하지 않고, 정황을 주시하면서 기다리다 참을 수 없을 때 일어난다(의분 축적 폭발)”로 풀이할 수 있다. 이를 잘 보여준 인물로는 JP(김종필 전 총리)가 꼽힌다. 충청인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JP가 있다”라고 한다.

충청 기질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글로컬 시대에 지역색이 없는 ‘충청 마인드’가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매사에 소극적인 태도는 지역은 물론 세종시 건설 같은 균형발전 사업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바야흐로 ‘국민 참여, 국민 주권 시대’다. 참여로 분권과 균형발전을 앞당겨야 한다는 게 시대 요구다. 충청 스타일도 변화가 필요할 때다. 실천하지 않으면 결과도 없다.

김방현 대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