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두 바이러스 키워 만든 대상포진 백신…세계 2번째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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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 공장에서 직원들이 대상포진 바이러스 배양기를 들여다 보고 있다.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폐 세포를 숙주로 몸집을 키운다.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 공장에서 직원들이 대상포진 바이러스 배양기를 들여다 보고 있다.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폐 세포를 숙주로 몸집을 키운다.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수두 바이러스는 백색 가루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증류수를 부으면 곧바로 깨어날 수 있다”고 이상균 SK바이오사이언스 안동공장 공장장이 설명했다.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키워 백신을 만드는 공장 내부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양쪽 손을 세 번(물비누, 손 세정제, 소독 분무기)에 걸쳐 씻었고, 속옷 차림으로 방진복 두 벌을 껴입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안동 백신공장 #출시 1년만에 국내 시장 30% 석권 #"한국 백신주권 확보하는게 목표"

지난 21일, 경북 안동시 풍산읍 SK바이오사이언스(이하 SK바이오) 백신 공장에선 수두 백신 포장이 한창이었다. 이상균 공장장은 “2017년 말 대상포진 백신을 생산한 다음 수두 백신으로 파이프라인을 늘렸다”고 말했다. 대상포진 백신 생산은 SK바이오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공했다. 이에 앞서 다국적 제약사 MSD는 2013년 대상포진 백신의 한국 판매를 시작했다. SK바이오가 내놓은 대상포진 백신은 출시 1년 만에 국내 시장 점유율 30%를 기록하는 등 순항 중이다. 독점 구조가 깨지면서 대상포진 백신 시장 가격은 연초 대비 3만~4만원 내렸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한 대상포진 백신 스카이조스터.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한 대상포진 백신 스카이조스터.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대상포진 백신 원액 생산 시설은 음압실(기압 차를 이용해 공기를 차단하는 시설) 두 곳을 지나고 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24시간 돌아간다는 배기팬 소음이 귀를 때렸다.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붉은색 배양 판에서 몸집을 키운다. 바이러스는 인간의 폐에서 채취한 세포(MRC-5)를 숙주로 삼아 자란다. 이와 달리 독감 바이러스는 개(犬)의 신장세포를 이용해 배양한다. 유시욱 생산팀 매니저는 “바이러스 배양 시에는 섭씨 34도로 유지한다”며 “다양한 실험을 거쳐 바이러스가 가장 잘 자라는 온도를 찾아낸 결과”라고 말했다.

배양을 시작한 지 한 달, 수확의 시간이 다가온다. 세포에 기생하며 몸집을 키운 대상포진 바이러스를 세포에서 꺼낼 타이밍이다. 이 과정에선 초음파를 이용한다. 적당한 초음파를 쬐 세포를 깨뜨린 다음 바이러스를 꺼낸다. 이후 특수 필터 등으로 걸러 대상포진 바이러스만을 골라 모은다. 그런 다음 질소를 가해 대상포진 바이러스를 동결ㆍ건조한다. 동결 건조를 하는 이유는 뭘까. 유시욱 매니저는 “동결 건조를 시키면 액체 상태일 때와 비교해 유통 기한을 늘릴 수 있다”며 “대상포진 백신의 유통기한은 18개월 정도”라고 말했다.

백신은 포장이 끝나도 곧바로 병ㆍ의원을 통해 유통되지 않는다. 회사 자체 검정(2개월)과 국가 검정(2개월)을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출하에 돌입한다. SK바이오 관계자는 “수출까지 염두에 두고 백신을 생산하기 때문에 충분한 유통기한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 공장에서 생산이 끝난 백신을 점검하는 모습. 광학 측정장비를 통해 백신 내부 이물질을 찾아낸다.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 공장에서 생산이 끝난 백신을 점검하는 모습. 광학 측정장비를 통해 백신 내부 이물질을 찾아낸다.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 생산 기술은 발전하고 있다. 독감백신의 경우1세대 유정란 생산 기술에서 2세대 세포 배양 방식으로 진화했다. 최근에는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백신을 만드는 기술도 등장했다. 이 공장에선 2세대 기술을 통해 백신을 만들고 있다. 포장 구역에서 자체 검정 실험실로 이동하기 직전에서야 방진복을 벗을 수 있었다. 방진복은 1분만 착용해도 세탁한 후에야 재사용할 수 있다.

대상포진 백신 시장은 전망이 밝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환자가 증가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9년 45만 명이던 대상포진 환자는 2014년에는 64만 명으로 늘었다. 연평균 7.3%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상균 공장장은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개발이 끝난 백신은 총 28종이다. 그중 국내에서 생산 가능한 백신은 15종뿐이다. 자급률로 따지면 50%를 막 벗어난 수준이다. 이 공장장은 “결핵의 경우 백신 부족 사태가 매년 반복되고 있는 건 100%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라며 “우리 기술로 백신 주권을 확보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안동=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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