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폐지 줍는 할머니 폭행 사건…신고한 고교생 말 들어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피해자 측이 지목한 사건 현장. 최은경 기자

피해자 측이 지목한 사건 현장. 최은경 기자

울산에서 술에 취한 20대 남성이 폐지 줍는 할머니를 폭행해 경찰이 조사하고 있다.

피해자 “폐지 손수레 잡더니 마구 때려” #지나가던 고등학생 3명이 말린 뒤 신고 #경찰, 10일 지나서야 피해자 조사 #“음주사고 처벌 강화해야” 국민 청원도

울산 울주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9일 오후 9시 45분쯤 울산 울주군 언양읍 한 길가에서 술에 취한 A씨(25)가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B씨(여·77)의 손수레를 잡고 “왜 그러냐”며 B씨의 양쪽 뺨을 2대 때리고 가슴을 밀쳤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건너편에서 길을 가던 고등학생 3명이 이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C군은 “큰 목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남성이 사람 위에 올라타고 멱살을 잡고 있었다”며 “가까이 가보니 할머니여서 남성을 붙들고 할머니 상태를 살핀 뒤 신고했다”고 말했다. C군은 “남성은 혀가 꼬이고 눈이 풀린 상태로 출동한 경찰관과 10분 넘게 실랑이를 벌였다”고 말했다.

당시 촬영된 영상을 보면 A씨는 “사람 몸에 손대지 말라”는 경찰관 말에 “손댔는데”라면서 어깃장을 부리고 욕을 했다. 신고한 학생들에게는 “니 학교 어디고”라면서 시비를 걸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지나가는데 할머니가 나에게 뭐라고 하는 줄 오해했다”며 “뺨 2대와 가슴팍을 친 것은 기억한다”고 진술했다. 취업 준비생인 A씨는 이날 도서관에서 공부한 뒤 친구와 소주 2병을 나눠 마시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피해자 B씨는 19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일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A씨가 갑자기 손수레를 잡고 안 놓아서 좋은 말로 가라 했는데, 말도 없이 손수레를 구석에 처박고 멱살을 잡으며 쓰레기통 있는 곳에 밀치더니 마구 때렸다”고 주장했다. 또 B씨는“너무 놀라 며칠 동안 온몸이 떨렸다”며 “목·머리·허리 등을 다쳐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묻지마 폭행 국민청원

묻지마 폭행 국민청원

B씨 가족은 “경찰에게 연락이 없어 15일쯤 경찰서에 찾아갔지만 담당자가 출장 중이라고 해 그냥 돌아왔다”고 말했다. 경찰은 “그동안 B씨 측과 연락이 되지 않다가 오늘 통화가 됐다”며 19일 현장을 찾아 피해자 측을 만났다. 경찰은 “A씨가 폭행 사실을 처음부터 인정했기 때문에 폐쇄회로TV(CCTV)를 따로 조사하지 않았다”며 “B씨 아들이 현장에 CCTV가 있다고 해 추가 조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건과 관련해 19일 음주 사고 처벌을 강화하자는 국민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 게시자는 “20대 음주자가 폐종이를 주워 정리하는 80대 할머니에게 묻지 마 폭행을 가했다. 길 건너 지나던 학생들이 폭행을 막았다”며 “음주 사고는 실수가 아니라 살인 행위이며, 다른 사람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음주 폭행 처벌을 강화하고 사후 인성교육을 늘리는 등 재범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