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엄마 앗아간 난폭 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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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차라리 못난 내가 죽어야지…. 전생에 당신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 꼴이 되었소….』
1일 오전 서울 강서 성모병원 영안실.
하루아침에 아내를 잃어버린 서기배씨 (45·서울 양천 구청 소속 청소원)는 넋을 잃은 채 부인의 영정을 쳐다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서씨와 숨진 부인 홍귀량씨 (38)는 사고 당일인 28일에도 여느 때와 갈이 새벽 2시에 집을 나서 신월동 남부순환도로의 청소를 마친 뒤 서씨는 쓰레기 리어카를 앞에서 끌고 부인 홍씨는 뒤에서 밀며 길 건너편으로 가고 있었다.
『3일이 막내 입학식인데 오늘은 옷이라도 한벌 사 입혀야….』
국민학교에 입학하는 막내에게 옷 한벌 사 입히겠다는, 채 끝맺지도 못한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홍씨는 새벽길을 과속으로 달리던 승용차에 받혀 숨졌다.
『행인이 나다니기 전에 쓰레기는 다 치워야하고 혼자 힘으론 도저히 리어카를 끌 수가 없다보니 애 엄마가 같이 나설 수 밖에요.』
홍씨가 매일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남편의 일을 도운 뒤 낮에는 「넝마주이」를 하며 「자식들이 집주인 눈치 안보고 살집을 마련키 위해 악착스럽게 돈을 벌어온지 10년째.
재작년에 15평짜리 연립 주택을 겨우 마련, 홍씨의 「평생 소원」은 이뤄졌지만 국민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4남매는 대신 어머니를 잃었다.
『도로변에서 새벽일을 하는 청소원들은 늘 자동차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서씨의 동료 청소원이 던지는 한마디.
시민들이 무심코 밟고 지나는 깨끗한 한길에는 자동차 공포에 떨며 청소원 부부들이 흘리는 식은땀이 속속들이 배어있음을 새삼 깨우쳤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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