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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베스트] 헤이, 하며 찾아온 눈부신 사람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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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호 32면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최근 출간된 신간 중 여섯 권의 책을 ‘마이 베스트’로 선정했습니다. 콘텐트 완성도와 사회적 영향력, 판매 부수 등을 두루 고려해 뽑은 ‘이달의 추천 도서’입니다. 중앙일보 출판팀과 교보문고 북마스터·MD 23명이 선정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단편보다 짧은 소설 19편에 담아 #시선 섬세한 김금희 새 소설집 #곽명주의 일러스트 곁들여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마음산책

그때그때의 기분, 분위기, 마음…. 이런 유동적이고 미묘한 것들을 소설로 붙잡는 작업을 해온 작가 김금희(39)씨의 새 소설집이다. 시대정신 같은 거창한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과거 어떤 소설 경향이 두드러졌었는지는 얼마든지 말해볼 수 있다. 가령 1980년대는 실천, 90년대에는 내면이 당대 소설을 관통하는 키워드였다고 할 수 있다.

2010년대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어쩌면 모든 것인 우리들의 ‘마음’이다. 그만큼 상처 입기 쉬운 시절이어선지도 모른다. 김금희는 새로운 내면성이라고 할, 이 분야를 파고든 선두 주자.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경애의 마음』, 제목만으로도 이게 뭔 얘기야?, 호기심이 당기는 소설책들을 통해 알콩달콩 달콤쌉쌀한 우리들의 사는 모양새를 알뜰하게 그려 왔다.

이번 소설책은 단편소설보다 더 짧은 작품 모음집이다. 보통 200자 원고지 80쪽가량인 단편보다 훨씬 짧은 25쪽 안팎의 19편이 들어 있다. 가벼워진 몸무게는 장단점이 있을 게다. 짜임새는 허술할지 몰라도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우리 삶의 극적 장면들을 상대로 치고 빠지는 데는 더 유리한 것 같다.

그런 기동성으로 김금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그리려 했나 보다.

작가 김금희. 현대인들의 ‘감정생태 보고서’ 같은 소설을 쓴다는 평을 듣는다. [사진 마음산책]

작가 김금희. 현대인들의 ‘감정생태 보고서’ 같은 소설을 쓴다는 평을 듣는다. [사진 마음산책]

“거듭되는 재회와 헤어짐 속에서도 당신들이 처음 내 마음속에 들어와 헤이, 라고 스스로의 존재를 각인시켰던 그 눈부신 순간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겠다고 ‘작가의 말’에서 다짐하니 말이다. 그런데 그 눈부신 순간의 소유권은 기억하는 사람에게 있다. 눈부신 순간을 야기한 사람은 어쩌면 자신이 그런 역할을 했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다정함을 주었던 사람만이 그 순간을 기억하는 법이다. 그러니 소유권은 기억하는 사람에게. 소설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그렇게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다.

가령 ‘류, 내가 아는 사람’은 “실패한 농담이 상대에게 주었을 모욕에 대해 밤길을 걸으며 사과하고 싶어 하던 사람”(91쪽)에 관한 이야기다. 학창 시절 전설 같은 일화를 숱하게 남겨 유명한 류 선배. 옛 스승의 장례식장 자리를 빌려 그야말로 오랜만에 나타나서는 받아들이기에 따라 택배 기사 비하로 느껴질 수 있는 행동을 한다. 택배 기사를 오빠로 둔 소설의 여성화자, 몇 잔 술김에 하극상 불만을 터뜨린다.

“택배가 뭐 어떻다고. 아, 얼척 없네.”

품위, 조신, 체면치레할 것 없이 솔직하게 청승맞은 속내를 드러내는 김금희 인물 특유의 유쾌함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어쨌든 화자의 이런 반응에 마음이 쓰인 류 선배가 밤길을 동행하며 사과했다는 이야기.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지나치게 순수하고 선량한 인간형인가? 어쩌면 숱한 상처와 좌절 끝에 지나치게 모질어진 우리 마음이 그런 인간을 비정상이라고 여기는 건지도 모른다.

김금희 소설은 마음산책 출판사의 효자 상품인 짧은 소설 시리즈 여섯 번째 책이다. 10만 부가 팔린 이기호의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등 짧은 소설 선은 경박단소를 선호하는 요즘 독서 트렌드를 타고 순항 중이다. 이번 김금희 소설집은 곁들인 일러스트레이터 곽명주의 소설 삽화 때문에 책을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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