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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벼랑정국」탈출 위한 승부 카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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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간평가방식이 노태우 대통령의 신임을 건 조기 국민투표로 확정됨에 따라 6공은 가장 큰 정치적 고비에 직면하게 됐다.
야당 일각에서는 연기론이 대두되고 있고 연기를 위한 구체적인 절충방안이 막후에서 오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는게 여권의 대세다.
「상반기신임국민투표」는 이제 거의 움직일 수 없는 기정방침으로 굳어졌다는 말이다.
국민투표를 주저해온 노 대통령이 이처럼 정면승부로 급선회한 것은 △노 정부의 권위가 온갖 야유를 받을 만큼 떨어져 정권의 유지자체가 문제되는 단계에 있고 △노 정부를 지탱해온 여권의 내부 불만이 임계 점까지 끓어올랐으며 △자칫하면 체제자체의 동요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노정부가 야당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연기론을 받아 또 시간을 끌거나 국회 투표 같은 대안을 덥석 받아들인다면 노 정부는 그나마 남은 공신력마저 잃고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와해상태로 빠져들 우려가 많다.
때문에 설령 야3당이 국민투표법안을 물고 늘어져 시간을 끌어도 소용없고 공동으로 연기를 요청해도 때가 늦어버린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조기신임국민투표로 방침을 굳혔다지만 민정당의 가장 큰 고민은 시기의 선택이다. 전통적으로 정치시즌인 상반기에는 곳곳에 지뢰밭이 매설돼 있다. 때문에 정부나 민정당 안에서도 △4·19이전 3월말·4월초 실시와 △4,5월을 넘기고 6·29 2주년전후 실시주장이 반반으로 팽팽하다.
조기실시론자들은 임시국회가 끝나자마자 노 대통령이 중간평가실시를 발표하고 3월말께 국민투표를 해야한다고 주장하고있다.
4·5월의 뜨거운 정치시즌, 어느 때보다 가열될 춘투, 가장 동원력이 강한 학생들의 본격조직화이전에 해치워버림으로써 야당-재야-학생들의 조직적 연대투쟁을 피하고 봄정국의 뇌관을 미리 제거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민정당목엔 이런 전격수단을 지지하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6·29전후 실시하자는 쪽의 논거도 만만찮다. 우선 3월말, 4월초에 실시하면 그 파국적 후유증이 4, 5월로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야당 측이 5공 청산의 미흡함을 노려 제동을 걸고 청문회 재개 등으로 파상공세를 취하고 전민련 등 재야와 학생들이 연대하면 승부를 예상키 어렵게되는 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야당 측이 제시할 수사미진·전두환씨 증언 등 조건들을 부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야당의 공세를 희석시킬 필요가 있고 또 4, 5월의 전민련세력과 노사분규 등이 치열한 임투·가투로 나타나면 국민사이에 안정지향성이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시기의 선택은 결국 야3당총재의 회동에서 제시될 중간평가에 대한 야당의 요구 조건들과 이 조건의 수용 여부가 논의될 여야간 개별 영수회담, 또는 청와대 4당총재회담의 결과와 직결된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국민투표를 실시키로 원칙이 섰다면 조기실시로 갈 공산이 더 크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미 여당 측은 서서히 임전태세를 가다듬기 시작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긴장상황을 6월까지 지속적으로 몰아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며 더군다나 야당의 공동전선을 예상보다 굳건하게 구축할 변수들의 등장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중간평가의 방법으로 굳이 국민투표를 택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국민투표는 대통령선거의 재판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게되면 다시 4당 체제를 가능케 했던 지역감정이 더욱 격화된 모습으로 드러나 동서분단현상이 심화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거기에 전민련이 가세하고 극렬 운동권조직이 참여해 화염병시위를 퍼부으면 정상적 투표가 어려운 극단적인 혼란상태도 예견할 수가 있다.
이를 회피할 방법이 모색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야당·재야가 불신임투쟁으로 정면승부태세를 굳혔듯 노 정부나 민정당도 국민의 직접의사를 묻겠다고 했다가 또다시 「회피적」태도로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정부가 이런 위험요소를 줄이면서 국민투표에서 승리할 수 있는 대상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가 관심이다.
당초 중간평가공약을 했었던 87년12월12일 여의도 유세연설 때는 『오늘 이 자리에서 한 약속과 6·29선언, 그 밖의 공약의 이행여부를 평가받겠다』고 했었다.
이것을 어떻게 국민투표의 구체적 의제로 만드느냐는 것이 문제다. 지금까지 몇 차례 국민투표가 있었지만 그것은 모두 당시 집권층의 지지기반을 강화하거나 통치명분을 주기 위한 의식절차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은 대통령의 신임이 걸려 현직 대통령의 중도하차라는 헌정상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헌법에 따르면 국민투표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대해 실시하도록 되어있다.
한때 항간에 소문이 나돌았던 것처럼 북방정책추진 같은 걸 대상으로 삼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야당 측이 요구하고 있는 「5공 청산」도 그대로 수용하기는 힘들다.
해서 민정당측은 중간평가의 의제를 「노태우의 평가」로 축소, 한정시킬 작정이다. 굳이 정계개편 등과 연계시켜 야당의 불신임투쟁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전략이다.
민정당이 검토하고 있는 안들은 △대통령의 신임 △노 정부의 6· 29선언 실천 등 민주화정책 △5공 청산 등을 포함한 지난 1년간의 치적 등이다.
대통령의 임기자체는 국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노 대통령의 정부를 신임할 것이냐의 여부를 묻겠다는 것이다. 국정 전반에 걸친 지난 1년간의 치적을 묻는 것도 그 맥락은 비슷하다.
노 정부가 가장 자신하는 부분은 6·29실천과 민주화다.
지난 1년간 자의든, 타의든 간에 각 부문에서 자율성이 크게 확대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고있다.
비록 각부문의 자율화가 과거 권위주의 통치의 반동으로 너무 크게 폭이 반대쪽으로 흔들러 이념과 가치질서의 혼란, 치안·민생의 동요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과도적 현상이고 전체적으로 민주화라는 큰 흐름으로 용인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해석이다.
이와 함께 최근 급격히 확산되고있는 좌파세력에 대해 쐐기를 박기 위한 조치로 자유민주주의체제 수호를 국민투표의 대상 속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체제수호론이 국민투표에 의해 국민의 승인을 받았다고 판단되는 결과로 나타날 때는 보다 강경한 조치로 이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김영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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