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세제 고쳐라"… 농산물 높은 관세 철회 등 전방위 개방 압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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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달 말 교환한 협정문 초안에서 상품.농업.서비스 등 전 분야에 걸쳐 자유무역을 가로막는 차별적인 제도를 철폐해야 한다며 강도 높은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김종훈 협상 수석대표는 "미국 초안이 상당히 보수적이고 공세적인 내용이어서 양측 입장에 큰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 전방위적인 개방 압력=미국은 배기량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매기는 현행 세제를 가격 기준으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한국에 수입되는 미국산 자동차가 배기량이 큰 대형차이기 때문에 자동차세를 더 내야 하므로 덜 팔린다는 것이다.

또 신종 파생금융상품 등 신금융서비스에 대해 내국민 대우를 적용, 금융시장을 더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산 상품에 대해 관세환급제도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밝혔다. 관세환급제도는 수출용 원재료 수입 때 낸 관세를 완제품 수출 때 돌려주는 것으로 대미(對美) 수출품에 대해서만 이 제도의 적용을 배제하자는 게 미국 측의 요구다. 이렇게 되면 대미 수출품의 가격이 높아지게 된다.

◆ 상품분야 협상도 쉽지 않을 듯=FTA의 혜택을 크게 볼 한국 업종으로 섬유분야가 꼽힌다. 이에 대해 미국은 섬유제품의 원산지를 따질 때 원사(原絲)의 생산지로 보는 '얀 포워드' 규정을 적용하자고 나섰다. 중국 등지에서 원사를 사와 한국에서 만든 섬유제품은 한국산에서 빼자는 뜻이다. FTA는 관세를 없애자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원사를 수입해 만드는 섬유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때 관세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한국산 상품 수입이 급격하게 늘어날 때 수입을 금지할 수 있는 특별 세이프가드 제도 도입도 요청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원목의 대미 수출 통제 ▶연안 해운에서의 미 국적 선박의 독점 취항 등 내국민 대우의 예외 조항은 그대로 인정해 달라고 했다.

한국은 한국산 수출상품에 대해 미국의 물품수수료.항만수수료를 면제하고, 원산지 규정에서 역외가공 방식의 특례를 도입해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 농업.서비스 분야의 미국 측 요구 많아=미국은 농업분야를 상품분야에서 분리해 별도 협상 대상으로 하자는 입장이다. 시장 개방을 요구할 내용이 많다는 뜻이다. 특히 일정 규모를 넘는 수입 농산물에 대해 높은 관세를 매기는 관세할당제도(TRQ)를 바꾸자고 요구했다. 농산물의 수입장벽인 TRQ를 보다 상세하고 투명한 내용으로 개선하자는 주장이다. 반면 한국의 농산물 특별 세이프가드 제도 도입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이다.

미국은 서비스분야의 포괄적인 시장개방 원칙을 강조했다. 특히 택배.외국법률자문을 즉각적인 전면개방 대상으로 명시했다.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50년→70년), 각종 법령 개정 시 입법예고 기간 연장(20일→70일) 등 제도 개선도 요구 사항에 포함됐다. 그러나 우리 측이 제시한 전문직 분야 자격증 상호 인정과 별도의 전문직 비자쿼터 설정 등에 대해선 소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통상교섭본부는 구체적인 상품.서비스 개방안과 예외 안에 대한 최종 입장을 7월 2차 협상 때까지 확정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27일 정부 주최로 공청회를 열어 각계 의견을 수렴키로 했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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