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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다, 신기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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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 강력(핵력).전자기력.약력.중력, 이 네 가지가 우주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힘이다. 물리학자들은 지금까지 이 네 가지 힘을 하나로 묶어 설명할 수 있는 만물의 이론을 찾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왔다. 대통일을 가능하게 한 최신 이론이 초끈이론과 그것의 최신 버전인 M-이론이다. 두 이론에 따르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는 각기 다르게 진동하는 끈이거나 막이다. 두 이론이 전제하는 것은 우리 우주가 10개의 공간 차원과 한 개의 시간 차원을 포함한 11개의 차원으로 이뤄져 있다는 가정이다. 4차원 세계(시간은 우리도 겪고 있는 차원이므로 정확히 5차원 세계라고 해야 맞다)만 해도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접하곤 했는데, 그보다 훨씬 많은 차원이 실제로 미소(微小) 세계 안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미치오 가쿠의 '평행우주' 및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

2. 멕시코의 고대 국가인 아스텍에서는 매년 전쟁을 벌여 잡은 포로들을 잡아먹었다. 한 해 적게는 1만5000명에서 많게는 25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먹었다고 한다. 반드시 아스텍 사회가 야만적이고 미개해서만은 아니다. 아스텍은 고도의 문화를 갖춘 제국이었음에도 이런 무시무시한 식인 풍습을 버리지 못했다. 당시의 아메리카대륙에는 소.양.돼지와 같은 덩치 큰 동물성 먹거리가 없었다. 가축이 없었기에 전쟁 포로들을 가축을 키우는 데 쓸 수도 없었고, 곡물을 엄청나게 먹어치우기에 이들을 곡물을 나르는 데 쓸 수도 없었다. 해결책은? 그들을 배 속에 넣어 곡물 대신 옮겨 가는 것이다. 동물성 식품이 부족해 사람들을 먹었다기보다는, 전쟁 포로를 처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먹었다는 것이다.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3. 몽골에서부터 만주.한반도에 사는 여러 민족을 가리키는 명칭은 모두 욕설이었다. '예맥(濊貊)'은 '더러운 짐승', '선비(鮮卑)'는 '동물 무늬가 있는 허리띠', '흉노(匈奴)'는 '떠들썩한 노예', '물길(勿吉)'은 '기분 나쁜 놈', '말갈(靺鞨)'은 '버선과 가죽신을 신은 놈', '몽고(蒙古)'는 '무지하고 촌스러운 놈', '읍루(婁)'는 '물질하는 놈'이란 뜻이다. 한족(漢族) 사가(史家)들이 이민족을 깔보고 낮춰 부르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읍루(이들은 아이누족이어서 다른 민족이라고 한다)를 제외하면 몽골에서 만주와 한반도.일본에 이르는 동북아 민족들이 사실은 모두 한 핏줄이라는 멋진 주장이 있다. (김운회의 '대쥬신을 찾아서')

4. 5.31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압승과 열린우리당의 참패로 끝났다. 정당 득표율에서 53.8%, 광역단체장의 75%, 기초단체장의 67.4%를 차지한 한나라당의 저력도 놀랍지만, 불과 2년 전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던 여당이 정당 득표율에서 21.6%, 광역단체장의 6%, 기초단체장의 8.2%를 얻는 데 그쳤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한번에 몰락할 수 있을까?

5. 칼럼 제목으로 삼은 구절은 이성복 시인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길어서 부분만 올렸다. 원래의 제목은 '신기하다, 신기해, 햇빛 찬연한 밤마다'이다. '햇빛 찬연한 밤'이라는 말, 오타가 아니라 역설이다. 시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신기하다, 신기해, 햇빛 찬연한 밤마다 악몽을 보내주신 그대, 목마름을 더 다오! 신열(身熱)을 더 다오!"

권혁웅 한양여대 교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