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정치Q] 역사를 바꾼 선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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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선거 중 매우 충격적인 선거로는 10, 12, 13대 총선이 꼽힌다. 78년 12월 10대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은 득표율에서 여당인 공화당에 1.1%포인트 앞섰다. 야당.재야.학생권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권에 대해 저항을 강화했고 공화당 정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사망한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당시 영부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박 대표는 선거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실감했다. 이번 선거에서 그가 테러 상처에 테이프를 붙이고 대전.제주까지 달려간 것은 선거에 대한 그런 기억 때문일 것이란 분석이 있다.

85년 2월 12대 총선. 그전까지 정통 야당세력은 5공화국 군부정권의 정치 규제에 눌려 있었다. 84년 11월 규제가 풀리자 이들은 신한민주당을 만들어 이듬해 선거에 출마했다. 유권자들은 이들에게 표를 몰아줬다. 1구2인제 덕분에 집권 민정당은 148석을 얻기는 했다. 그러나 태풍의 눈은 67석을 얻어낸 신한민주당이었다. '관제야당'으로 여겨졌던 민한당은 35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들은 곧 신민당에 흡수됐다.

이 선거로 국민은 5공 정권에 본격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2년여 뒤인 87년 6월 시민항쟁이 터졌고 정권은 6.29선언으로 민주화 조치를 수용해야만 했다. 한국 민주화의 도화선은 85년 2월 총선이라고 할 만하다.

88년 4월 13대 총선도 10, 12대 총선만큼이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다. 유권자는 87년 대선에선 민정당 소속(노태우)을 대통령으로 뽑았지만 88년 총선에선 여소야대를 만들어 버렸다. 권력에 대한 견제였다. 여소야대로 국회는 5공 비리와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대한 청문회를 열 수 있었다. 결국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백담사로 가야 했다. 여소야대를 극복할 수 없었던 노 대통령은 90년 1월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과 합쳤다. 3당 합당이었다. 선거의 민심을 국민의 동의 없이 권력 마음대로 바꾼 것이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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