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안 마련해놓고도 머뭇거리는 국방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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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에 따른 대체복무제 정부안의 큰 가닥을 잡고서도 발표를 미루고 있다. 야권과 시민사회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센 데다 정부 내에서도 비협조적인 기류가 감지돼서다.

지난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기자회견에서 병역 거부자 및 사회단체 회원들이 대체복무제안 수정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기자회견에서 병역 거부자 및 사회단체 회원들이 대체복무제안 수정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부의 정부안은 지난 6일 발표가 예고됐지만, 현재 기약 없이 연기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1일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판결 무렵 발표 날짜를 6일로 잠정 확정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의견 수렴 과정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에 일정을 미루게 됐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정부안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복무기간 ‘36개월’ ▶복무분야 ‘교정시설’ ▶복무형태 ‘합숙’ ▶심사기구 ‘국방부 산하’ 등을 대체복무의 쟁점이 된 4가지 사안에 대해 방향을 확정했다.

국방부는 지난 6월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를 2019년 12월 31일까지 도입하라고 결정하자 병무청·법무부 등 관계기관들로 구성된 실무추진단(추진단)을 구성하고 8월 첫 회의를 열었다. 법제처 심사→국무회의 의결→국회 제출·통과 등 입법 절차를 감안해 가능한 한 빨리 정부안을 발표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겠다는 게 당초 국방부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4가지 쟁점에 대해 야권과 시민사회의 눈치를 보면서 지난 8월부터 발표 예고와 연기를 거듭해왔다.

국방부가 머뭇거리는 가장 큰 이유는 야권의 반발이다. 자유한국당은 교정시설 복무를 규정한 정부안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대신 지뢰제거와 전사자 유해 발굴에 대체복무 인력이 투입돼야 한다는 게 한국당의 안이다. 한국당의 김학용·이종명 의원은 이런 내용의 대체복무제 법안을 따로 발의했다. 정부 당국자는 “대체복무 관련 의원 발의 법안이 9개로 나뉘어 있어 한국당 협조 없이는 합의된 법안이 나오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국방부가 정부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한다면 강경 투쟁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국방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형평성 논란을 빚고 있는 대체복무가 대정부 투쟁의 호재라 판단한 듯하다.

국회에 제출된 대체복무 법안들 그래픽 이미지.

국회에 제출된 대체복무 법안들 그래픽 이미지.

시민사회 움직임도 고민거리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단체는 심사기구를 국방부가 아닌 국무총리실이나 행정안전부 등에 독립적으로 두자고 주장한다. 국방부가 심사기구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한다고 해도 이 같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육군의 2배인 36개월의 복무기간도 시민사회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 복무 기간이 현역의 1.5배가 넘으면 ‘징벌적 대체복무’와 다를 게 없다고 판단해서다.

정부 내에서 대체복무제 관련 업무를 떠넘기는 분위기도 국방부를 곤혹스럽게 한다. 정부 소식통은 “국방부도 당초 심사기구를 국방부 산하에 두고 싶어하지 않았다”며 “국무총리실, 법무부, 행정안전부 등 다른 부처로 넘기는 대안을 검토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 부처는 소관 업무가 아니라며 거부했다. 대체복무 업무가 병역, 크게 봐선 군 인력의 문제라는 게 표면적인 논리다. 그러나 이 소식통은 “논쟁의 소지가 많은 ‘잡무’라는 게 실제 거부 이유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체복무제 법안은 내년 2월 임시국회 때부터 논의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올해 안에는 정부안을 발표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야권과 시민사회의 반발이 줄어들 계기를 마련하기 힘들기 때문에 올해 안 발표도 쉽지 않다는 게 국방부 안팎의 시각이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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