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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색 다르다 폭행, 2년간 받은돈 15만원"···IT계 또다른 양진호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 [연합뉴스]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 [연합뉴스]

아이폰 디자이너처럼 성공한 IT 전문가가 되고 싶었던 20대 김현우씨의 꿈은 한 스타트업 기업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2014년 12월 IT 스타트업 기업에 입사한 김씨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를 디자인으로 구현한 조너선 아이브처럼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런 열정을 회사가 믿어준다고 믿었고 대표 A를 스티브 잡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게 착각이었다. 어느 날 사비로 산 미니 선풍기와 발광다이오드(LED) 라이트를 회사에 가져오자 A는 “왜 샀느냐”고 추궁했다. “업무 중 필요하다”는 답변에 A는 “변명하는 입이 문제”라며 김씨의 얼굴을 때렸다. A는 “피하면 회사 쫓겨난다”며 계속 때렸고, 김씨는 입술이 터져 피가 날 때까지 맞았다. 다른 직원은 A가 운영하는 카페에 지원 업무를 갔다가 골프채로 맞기도 했다. 잘못된 색상의 셔츠를 입고 왔다는 이유였다. 실수한 직원을 나이 어린 직원에게 주먹으로 때리게 시키기도 했다. A는 “일하는 방법을 모르는 녀석들을 가르친 것”이라고 폭행을 정당화했다. 지난해 퇴사한 김씨가 2년여 동안 일하며 받은 돈은 15만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세미나 ‘IT 노동자 직장 갑질ㆍ폭행 피해 사례 보고’에는 ‘제2, 제3의 양진호’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실이 주최한 이 날 세미나의 사례는 구속된 위디스크 양진호 대표의 행위와 유사했다. 첨단 산업이라는 화려한 외양과 달리 갑질ㆍ폭행ㆍ폭언으로 얼룩진 IT업계의 실상이 드러났다.

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직장인들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직장인들 모습. [연합뉴스]

김환민 IT산업노동조합 직장 갑질 TF팀장은 “성추행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의 솔루션 개발업체의 사장 B는 상습적으로 남성 직원의 성기를 잡아당기고 여성 직원의 볼에 뽀뽀했다. 어린 신입직원을 계약직으로 뽑아 고용노동부 지원을 받은 뒤 1년 뒤에는 해고하는 일도 반복적으로 벌어졌다.

또 다른 IT기업 C사는 퇴사한 직원에게 일을 시키고 거절하자 고소를 했다. 피해자는 프로그래밍 업무의 특성상 퇴사 후에도 어느 정도 돕는 관행에 따라 일을 도왔지만, ‘강제 노역’이 한 달 넘게 이어지자 거절했다. 그러자 회사 측은 그가 퇴사 전 쓰던 컴퓨터를 복구해 ‘고의로 파일을 삭제했다’는 누명을 씌워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교육 콘텐츠 업체 D사는 업무가 끝난 뒤 ‘자아비판’이나 ‘반성문’ 형식의 업무보고를 강요했다. 채식주의자인 직원에게 육식을 강요하기도 했다. 피해자 장모씨는 2년 8개월의 근무 기간 중 11달은 주 12시간 이상 연장 근로를 했고, 휴일 수당도 받지 못하고 주말 근무에 동원됐다. 이날 간담회에는 피해자의 언니만 나왔다. 언니 장씨는 “과로와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던 동생은 지난 1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울먹였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현동 기자]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현동 기자]

이철희 의원은 “오늘 나온 피해 사례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IT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보니 참여자(503명)의 23.3%가 상사로부터 언어폭력을, 20.3%가 위협 또는 굴욕적 행동을 당했다고 응답했다”고 말했다. 절반 이상이 ‘1년 내 자살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다’고 답했다고 한다. 예병학 11번가 노조위원장은 “2000년대 초반 벤처 1세대의 성공신화가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라는 업계 생태계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진단했다. 장재원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IT업계는 파견 노동 등 불완전 고용이 많고 이직률이 높은 반면, 고용시장 규모는 크지 않아 갑질이 만연한다”고 분석했다. 김환민 팀장은 “프리랜서 직원들을 상대로 ‘IT 업계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끝장이라는 식으로 직원을 협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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