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위 정국 끝내 반쪽-야 단독 광주청문회 속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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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최씨 모욕죄도 성립>
22일 재개된 광주청문회는 민정당 의원들이 불참, 의원석 절반이 텅빈 가운데 야당만으로 절름발이 진행.
문동환 위원장은 회의를 시작하면서 『광주사태를 민주화운동이라고 인정한 민정당이 여전히 현장증언을 듣는 중요한 자리에 불 출석한 것은 이해할 수 없고 의아한 일』이라며 더욱 성실히 물어달라고 주문.
문 위원장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 수 차례에 걸친 출석요청에도 거부하다가 동행명령 장 재 집행마저 다시 거부한 것은 유감』이라고 밝히고 또 『민정당측 증인인 장사복씨는 축농증수술, 최예섭씨는 치핵수술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 불 출석을 통지해왔다』고 보고.
이에 김문원 의원(공화)은 의사진행발언을 얻어 『절충을 벌여 민정당 의원들이 내일이라도 출석토록 하자』고 했고 장석화 의원(민주)은 전두환·최규하씨는 출석거부 죄에 국회모욕죄까지 성립하게 됐다고 주장한 뒤 장·최씨 또한 청문회일시에 맞춰 수술을 핑계로 불 출석한 것은 국민을 우롱하고 무시한 처사인 만큼 청문회를 중단, 전체회의를 열어 이들에 대한 동행명령 장 집행을 의결하자고 제안.

<정족수 못 채워 해프닝>
광주특위와 같이 야3당만으로 전체회의를 강행한 22일 국회5공 특위도 『민정당이 불참한 덕분』(김동주·민주)인지 일사천리로 진행.
이기택 위원장은 『민정당과 더불어 구시대청산을 하려고 했으나 민정당이 이를 외면해 야당만으로 비리를 파헤칠 수밖에 없다』면서 국민적 관심인 부실기업과 종교탄압 등 인권문제를 전체회의형식으로 조사하자고 제의.
이에 따라 추가조사대상을 선정하고 의결하는 순간 정일영 의원(공화)이 잠시 자리를 비워 의결정족수가 모자라 정 의원을 찾아다니는 해프닝도 연출.

<김복동·김금순·최진수·전염병씨 증언 송암동 양민학살 등 피해>
▲김복동씨 증언=21일 밤11시쯤 송암동 앞을 지나가던 버스에 산 쪽에서 집중사격이 가해졌는데 다음날 나가보니 시체가 논에 3구, 언덕쪽에 2구가 피범벅이 된채 있었고 버스 안에도 운전대쪽에 2구, 바닥에 1구, 유리창에 기대어 1구 등이 있는 것을 보았다.
총 맞은 시체였다. 얼마 뒤에 다시 가보니 시체가 안 보이는데 인분탱크 옆에 모아놓고 풀 더미로 덮어놓은 것같이 보였다. 그 뒤 GMC트럭이 담요를 덮은 채 지나갔고 풀 더미의 시체도 없어졌다.
24일 11공수와 보병학교 교도 대간의 오인사격 교전장소는 집에서 5백m거리의 고속도로 커브 길이었다. 총탄이 날고 지프1대가 폭파되는 것을 보았다.
교전 1∼2시간 뒤에 헬기가20여회 뜨는 것을 보았으며 5∼6구는 희고 푸른 마대에, 4∼5구는 들것에 싣고 갔다.
또 19일 광주상고에 다니는 아들을 찾으러 나갔다가 오후3시쯤 공용터미널 앞길에서 계엄군이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남녀1명씩이 지하도로 뛰어들려는 것을 사격,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전영병씨 증언=초등학교 4학년인 재수(11세)가 점심 먹고 l시쯤 막내와 장난치 길래 조용히 놀라고 했더니 마을 앞으로 놀러 나갔다. 30분쯤 지나 송암동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조금 있으니 폭탄 같은 총소리가 들렸다.
동네사람이 아들이 죽었다고 해 나가보니 허벅지 살이 다 떨어진 채 죽어 있었다.
친구들 얘기를 들으니 길가에서 놀다 군인이 탄 트럭3대가 갈 때 함께 손을 흔들어줬는데 조금 뒤 총소리가 들려 3m언덕을 넘어 산으로 도망쳤다. 아들은 고무신이 벗겨져 주우러 다시 내려오다 총에 맞았다.
3발정도 맞은 걸로 알았으나 전남대 병원에서 해부하니 10발도 더 맞은 걸로 확인했다.
▲김금순씨 증언=24일 오후2시쯤 사방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들렸다. 부엌구석에 엎드려있는데 유리창으로, 부엌문으로 총알이 들어 왔다.
큰방 아주머니를 따라 지하실에 들어가 있으니 군인들의 구두 발 소리가 들리고 『안 죽으려면 나오라』고 외쳤다. 조금 있다가 나오니 젊은 사람 3명만 없어졌다. 계단에서 보니 김성홍 이란 청년은 철로 위에서 퍽 엎어졌다.
내 아들(권근립)과 임병철 이란 청년은 신작로 옆 도랑에 엎어져 있었는데 피가 흥건했다. 방은 얼마나 뒤졌는지 장롱서랍을 다 뒤져 옷·이불이 널려있고 시계·담배·라이터까지 다 가져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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