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 갉아먹는 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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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시 행정의 난맥의 표본은 다름 아닌 도시계획 행정이다. 도시계획을 변경할 때마다 말썽과 잡음이 따르고 한치 앞도 못 보는 졸속계획이 수없이 되풀이 되어왔다.
천연의 조건들을 고루 갖춘 서울이 오늘날 이토록 볼썽사납고 불편하게 된건 차지하고라도 그나마 남은 공원과 녹지들을 마구 잠식하고 경관을 허물어왔다. 서울시가 시민공원으로 조성키로 한 보라매공원일부를 감쪽같이 용도 변경해 벌써 특정인에게 팔아 넘긴 것도 그중 하나다.
한뼘의 녹지공간이라도 넓혀야 할 서울시가 시민의 소중한 휴식처를 앞장서 갉아먹는 처사에 공분을 금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은 인구 과밀과 찌든 공해로 질식 직전의 중병을 앓고 있다.
우중충한 빌딩 숲에다 혼탁한 공기를 마시며 살아야 하는 시민들로서는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경관이 더없이 소중하고 피로를 풀어주며 정서를 풍부하게 하는 휴식공간이 절실하다. 그런데도 어쩌다 공원을 찾으려해도 마땅한 곳이 드물거니와 그나마 포화상대다. 휴일의 어린이대공원이나 서울대공원마저도 항상 만원이고 행락철에는 발 디딜틈조차 없이 붐비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의 공원면적이 1인당 3평으로 외국 도시와 손색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공원과 녹지의 확장을 마다할 시민은 없을 것이고 앞으로 도시화가 촉진될수록 확장의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을 서울시가 작년 선거 철에는 노란 자위 도심공원과 녹지를 대거 해제해 주더니 얼마전에는 나무가 적게 서있는 도심 녹지까지 택지개발을 허용키로 결정했다. 도시인의 오아시스인 녹지는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게 하고 더 푸르게 하는 게 시정의 온당한 방향이다.
나무를 몰래 베어버리거나 나무를 안 심고 방치해둔 산은 택지개발을 허가해 주고 나무를 열심히 심고 가꾼 산은 계속 묶어 두겠다는 행정은 행정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도벌과 남벌을 조장하는 것 밖에 안되고 정부의 산림시책과도 어긋나는 것이다.
녹지로 계속 묶어두어 사유재산권의 침해가 문제되는 것이라면 시가 적정한 가격으로 사들이거나 보상을 해주는 게 행정이 취해야할 마땅한 도리다.
보라매공원 역시 용도변경의 이유가 서울시 주장처럼 이곳을 관악·동작지역의 중심지구로 개발키 위한 것이었다면 이러한 계획을 의당 시민에게 고지하고 의견을 들었어야 했다.
공원부지가 시민들의 것이고, 시민의 휴식공간 일진대 공원 땅을 떼내 특정업자에게 넘길 것인가의 결정권은 시민에게 귀속되어있다. 그러한 중대사를 공람 등 적법 절차마저 무시하고 말 한마디 없이 해치운 것은 행정의 전횡이고 직권의 남용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는 강북의 숱한 학교들을 강남으로 이전시킬 때도 학교부지를 모두 도심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공언했다가 전면 백지화했다. 학교를 옮긴 자리에 고층건물이 들어설 경우 엄청난 교통수요로 도심교통난을 부채질할게 뻔하다.
도시행정의 목표는 도시의 인간화에 있고, 삶의 환경을 보다 아름답고 쾌적하게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며 가꾸는 일이다. 인간을 무시하고 삭막한 괴물덩어리로 만드는 도시행정은 문책 받아 마땅하다. 보라매공원의 매각처분에 대한 시 당국의 충분한 경위설명과 납득할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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