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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기자와 시장원리-노계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사이비기자가·도처에서 횡행하고 있다 해서 세간에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른바 6·29선언 이후 일간·주간·월간 등을 통틀어 무려 9백 개가 넘는 매체가 등록·창간 또는 복간되면서 그중 일부가「기자」들을 무보수로 채용하거나 오히려 돈을 받고 신분증을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각종 업소나 기업체에서 공갈 협박으로 금품을 갈취하거나 광고를 강요하고 물품강매 행위를 일삼고 있어 피해가 막심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이버 기자의 횡포를 조직폭력배와 인신매매사범과 함께 민생치안 차원에서 엄중히 다스린다는 방침도 나오고 있다.
반면에 진짜기자의 근황은 어떤가. 그 숱한 시위현장에서 이쪽저쪽으로부터 얻어터져 카메라가 박살나고,『기자면 다냐』고 멱살을 잡히면 땅 바닥에 나둥그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요즘 기자다.
권세깨나 부리는 분들이 발설해놓고 세 불리해 지면「와전됐다」느니「그런 기자와 만난일도 없다고 딱 잡아떼면 영락없이 청력 불량자나 고의적인 압조자쯤으로 스타일 구겨지는 것이 요즘 진짜 기자 팔자 아닌가. 기사가 자기마음에 안 든다 해서 전화로 갓은 폭언을 퍼붓고 늘어지는 얼굴 없는 독자에게 시달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심하면 칼침을 맞기도 하는 것이 요즘 기자 신세 아니던가.
그런데 이른바 가짜·사이비 기자들은 오히려 큰소리 치고 협박·공갈로 금품을 갈취하며 활개친다니 고소를 금할 수 없다.
제대로 돼먹은 사회에서는 사이비기자·사이비언론이 발붙일 수 없다. 그들이 횡행하는 것은 거기 에 알맞는 사회풍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사이비 언론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작년 추석 무렵의 일이다. 종업원 20여명을 두고 소규모 요식업을 경영하는 어느 친지의 전화를 받았다. 명절에 종업원들과 함께 근처 양로원엘 위문가려 하니 신문에 좀 내달라는 내용이었다. 기사 미달이라는 점을 설명해 주었더니 이내 납득하고 통화를 끝냈다. 그후 우연한 기회에 그 친지를 만났더니 관련업계 전문지에 「교통비」를 주고 부탁했더니 기사가 사진까지 곁들여 났더라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이었다.
명예나 명성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본능일 것이다. 그리고 선행으로 해서 자기의 이름이 대중매체에 나으면 명예도 되고 사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자기의 명성을 과시하고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대중매체에 접근하려는 생각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의 허영과 과시에 대한 욕망이 존재하는 한 이에 부응하는 사이비 언론의 수요는 항상 있는 것이고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르는 것은 일반상품의 시장원리와 다를바 없다. 경제가 발전했으되 부의 균배가 충분치 못한 까닭에 사람의 의식이 허영과 과시욕에 사로잡히기 쉽고 사이비언론이란 이런 사회적 미숙상태에서만 가능한 병폐중의 하나인 것이다.
사이비 언론을 공급적 측면에서 보면 더욱 적합한 조건을 갓춘 것이 또한 우리 사회다. 간판만 하나 내걸고 기자 신분증을 기십만원을 받고 남발하는가 하면 월급은커녕 사납금을 정기적으로 받기도 하는 매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럴 수 있기에 적합한 조건과 토양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불법·부정·비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사이비 언론이 설칠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돈 뜯기고도 꼼짝못하고 입 다물수 밖에 없는 약점을 지닌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사생활의 비밀에서부터 공직자의 부정, 기업이나 단체의 불법·탈법에 이르기까지가 사이비기자의 좋은 흥정거리요「밥」인 것이다.
사이비 언론이 수없이 생겨나고 있는 사실은 그들이 먹고 살 수 있는「밥」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확신과 나름대로의 사업전망이 서기 때문이다.
염색공장을 하고 있는 고향사람 한 분을 만났더니「기자」욕을 마구 퍼부어 댔다.
밤중에 하수구를 통해 폐수를 살짝 좀 내보냈더니『귀신같이 냄새를 맡고』기자란 사람이 찾아와 경위를 묻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사진까지 찍더라는 것이다. 기겁을 해서 손이 발이 되도록 사정을 하고「봉투」를 내밀었더니 슬그머니 물러나며『안심하라』고 하더란다. 거품을 물고 흥분하는 그에게『당신이 폐수를 안 버렸으면 그자가 찾아 왔을리도 없고 찾아와 공갈을 했던들 당신 성깔에 따귀나 때려 쫓아보냈을 것 아니냐』 며 정색을 하고 쏘아붙여 주었다.
진짜기자는 취재하다가 얻어맞고 부상하는 한편에서 가짜·사이비 기자들은 당당하게 공갈·협박으로 돈 챙기며 유유히 돌아다니는 세상을 제대로 된 세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이비 기자를「민생치안」차원에서 일망타진하겠다고 당국의 서슬이 퍼런 것 같다.
그러나 구린데가 많고 병든 사회풍토에서는 사이비 언론의 준동을 근절시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허영심과 과시욕을 충족시켜 주는가 하면 부정을 은폐시켜 주기도 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서로 공존공영의 관계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비 단속은 좋으나 그 핑계 대고 진짜를 때려잡는 일이나 다시는 없었으면 한다. <편집국장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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