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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 지원해 당당한 혜택 누리세요” 한 사립유치원 원장의 조롱

중앙일보

입력

박용진 더불어민주당의원이 지난달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 (사립 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토론회 개최를 반대하는 사립유치원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뉴스1]

박용진 더불어민주당의원이 지난달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 (사립 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토론회 개최를 반대하는 사립유치원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뉴스1]

울산의 한 사립유치원이 학부모들에게 수용 불가능한 조건을 내건 진급신청서를 보내면서 “학부모 부담금 공짜 국공립유치원 지원하셔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당한 혜택을 누리라”고 조롱해 비난을 받고 있다.

8일 울산시교육청과 울산 북구에 위치한 해당 유치원 학부모 등에 따르면 A 유치원 원장은 지난 7일 ‘사랑하는 자녀의 내년도 진급을 앞두고 계신 부모님께’라는 제목의 진급신청서를 학부모들에게 보냈다.

A유치원 원장은 “2019년도 교육 내용이 변경됐다”며 내년도 수업시간은 오전 8시 40분부터 낮 12시 40분까지 4시간이며, 원생들은 점심 도시락을 지참해야 한다, 차량 운행이 없어 자가 등·하원 해야 한다, 여름 방학은 5주·겨울 5주 등 연간 10주로 고지했다. 교육비는 학부모 부담금 15만3000원에 누리과정비 22만원을 더한 37만3000원으로 표시했다.

또 누리과정비를 보호자가 정부로부터 직접 수령해 납부하라는 조건도 내걸었다. 현재 누리과정비는 교육당국에서 유치원으로 직접 지원하기 때문에 학부모가 이를 국가에서 수령해 사립유치원에 내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면서 ‘9일(금)까지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진급 의사가 없는 것으로 집계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신청을 하지 말라는 의미를 내포한 조건으로 해석된다.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사립유치원 비리근절 대안마련 정책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석 예정된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측의 불참으로 자리가 비어 있다. [뉴스1]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사립유치원 비리근절 대안마련 정책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석 예정된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측의 불참으로 자리가 비어 있다. [뉴스1]

A유치원 원장은 이어 사립유치원에 대한 최근 정부의 조치를 비판하며 “유치원 감사 결과가 비리유치원으로 과대 포장돼 발표된 후 며칠 동안 학부모에게서 많은 전화와 질타를 받았고 많은 생각으로 조울증, 편두통, 대인기피증 증상으로 병원을 오가는 아픔을 겪고 있다”면서 “울산교육감이 비리신고센터를 개설하는 등 사립유치원을 감시하는 '보이지 않는 눈'을 만들어 저는 수십 년 유아교육에 대한 자존감을 완전히 잃었다”고 호소했다.

마지막에는 “학부모 부담금 없이 (공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국공립유치원에 지원하시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당한 혜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붙이기도 했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A유치원 원장은 현재 울산 북구에서 2개의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둘 중 규모가 큰 유치원은 지난 2015년 이뤄진 종합감사 당시 시설관리와 행정일반 분야에서 각각 주의 처분을 받았다. 1900만원 상당의 놀이터 수선공사를 하면서 공사명세서 등 계약 증거가 되는 서류를 구비하지 않았고 2014년도 결산과 2015년 예산, 교육과정 운영방법 등의 사항을 운영위원회 자문을 받지 않고 운영위원회 개최 후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은 등의 이유 때문이다.

다른 작은 유치원은 2017년 감사에서 예산·회계 2건, 행정일반 1건 등 3건이 적발돼 모두 경고 처분을 받았다. 회계·예산 분야에서는 장부·서류 관리와 계약 완료에 따른 대가 지급이 완료됐는데도 계약 성립 증거가 되는 서류 관리를 소홀히 했고, 유치원 보험료를 납입하면서 적금 형태의 적립을 포함하는 등 회계·예산 집행을 부실하게 했다. 행정일반 분야에서는 일부 교직원에 대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보수 지급 대상이 될 수 없는 교직원들에게 보수를 지급했다.

울산 한 사립유치원이 원생 가정에 보낸 진급신청서에서 사실상 학부모들이 수용하기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어 논란이 되고 있다. [독자 제공=연합뉴스]

울산 한 사립유치원이 원생 가정에 보낸 진급신청서에서 사실상 학부모들이 수용하기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어 논란이 되고 있다. [독자 제공=연합뉴스]

A유치원 원장이 보낸 진급신청서 내용은 울산 지역 학부모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학부모들은 지역 카페 등을 통해 해당 내용을 공유하며 “비리 유치원 원장이 학부모들을 겁박하는 것”이라며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상황이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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