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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민연금 개혁안 …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이 최악의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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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재인 대통령이 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연금 개혁이 난기류에 빠지는 듯하다. 이러다가 해를 넘기고 2020년 총선 정국에 휩싸이면 수년간 표류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전면 재검토 지시의 주요 이유는 보험료 인상 부담감이다. 복지부가 제안한 네 개 방안 중 세 개는 보험료를 9%에서 최소 12%, 최대 15%로 올리는 것이다. 보험료 인상 제안은 복지부의 생각이 아니다. 지난해 8월부터 내로라하는 국내 연금 전문가들이 모여 장기 재정을 추계해 보니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냈고, 대통령 보고에 거의 그대로 반영했다.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때문에 기금 고갈이 3년 당겨져 미래 세대에게 소득의 4분의 1을 보험료로 떠안기지 않으려면 현 세대가 나서야 한다는 전문가의 고언이 담겨 있다.

문 대통령은 노인빈곤 완화를 위해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자는 신념을 갖고 있다. 복지부 안에 이것도 들어 있다. 물론 보험료를 13%로 올리는 것과 패키지로 돼 있다. 그런데도 보험료 인상에 거부감을 보인 이유는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정책 탓일 수 있다. 일자리가 줄고 자영업 폐업이 늘면서 소득이 떨어지는 마당에 보험료 인상 카드를 꺼내기 쉽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소득주도 성장이 연금 개혁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보험료 인상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고 본다. 이 눈높이가 과연 뭘 말하는지 사뭇 궁금하다. 보험료 인상에 선뜻 동의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국민이 원하지 않는 것도 할 줄 알아야 진정한 지도자다. 그걸 설득하고 넘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두려워서 자꾸 국민을 핑계 삼으면 개혁을 안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이야말로 최악의 정책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