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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 나이지리아 보냈다…외교부 살렸던 노신영 배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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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외교부의 고통스러운 내우외환

외교부는 침체돼 있다. 주변 환경은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문재인 정권의 국정 중심은 남북관계다. 외교부가 머문 곳은 변방이다. 외교의 주도권도 청와대로 넘어간 지 오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리더십 비전은 모호하다.

외교부의 대미 라인 배제는 #“미국의 의중 살피는 외교부 #체질에 대한 문 대통령의 불신” #노무현 정권 초기의 혁신 #데자뷔지만 근본적으로 달라 #외교부의 이념과 주류세력 교체 #강경화 평판은 인사의 무기력 #5공시대 노신영, 용기·지혜로 #69명 숙정 대상자 거의 구제

4강 외교는 헝클어져 있다. 한·미 동맹은 불협화음 속에 있다. 한·일 관계는 최악이다. 한·중 관계는 정체 상태다. 동북아 질서는 격랑 속이다. 미·중 통상 전쟁은 우여곡절 속에 진행된다. 시진핑의 중국과 아베의 일본 관계는 재편되고 있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수동적 자세로 관망 중이다.

외교부의 쇠락은 진행형이다. 왜 멈추지 않는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7일 이렇게 해석했다. “외교부, 특히 대미 정책 라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행태에 대한 정권 차원의 불신 때문으로 본다.” 정세현은 “외교부의 옛 대미 라인 담당자들은 미국의 의중부터 먼저 살피고, 남북 문제엔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소극적이었다. 그런 행태에 문 대통령은 답답해했고 그들을 배제했을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세현은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남북문제 자문그룹을 이끌었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도 함께했다. 그 그룹의 기조는 남북관계 선행론이다. 그들은 남북과 한·미 관계의 동반 진전론에 반발한다. 그들의 외교부에 대한 기억과 인식은 불만과 반감이다.

문 대통령의 대북 접근법은 ‘한반도 운전자론’이다. 그 바탕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인·주권 의식이다. 그것은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문제에 선제적 동력을 제공했다. 그것으로 한반도 정세 변화를 이끌었다. 그런 ‘한반도 운전자론’은 대미 라인 사람들에게 대체로 이질적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외교부는 개조 대상이다. 수단은 인사다. 속도전의 강박관념이 겹친 듯하다. 거기서 나오는 기운은 거칠고 단선적이다. ‘워싱턴 스쿨’의 대미 라인은 퇴출 신세다. 그런 흐름은 노무현 정부 초기에도 있었다. 그 시절 동맹파와 자주파의 갈등이다. 자주파의 핵심은 현재 남관표 청와대 안보실2차장이다. 하지만 15년 전 그때와 규모와 차원이 다르다.

교부 현직 대사는 지금 상황을 익명으로 설명한다. “외교부 개조는 노무현 정권 초기의 데자뷔 같은 형태로 시작했다. 그때는 주로 정책 논쟁이었다. 지금은 근본적인 변혁 분위기다. 외교부의 문화, 주류 세력, 이념적 성향에 대한 개조 작업이다. 대법원 색깔도 진보로 바꿨는데 힘 없는 외교부는 따를 수밖에 없다.” 권력의 주류 교체는 문재인 정권의 지향점이다. 그는 “대미 라인 출신들의 과도한 엘리트 의식도 자업자득이 됐다. 그들의 핵심 자리 독과점은 질시와 비판을 받아왔고, 외부의 간섭과 개입을 불러왔다”고 했다.

그 시범케이스는 황준국 주영 대사의 소환·문책이었다. 이유는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 이면 합의’ 논란이다. 하지만 그 협상은 성공작이다. 지금의 트럼프 정부라면 거부했을 것이다. 황준국은 북미국장·주미공사·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냈다. 그런 경력은 현 정권의 의심과 배척 요소다. 그런 코스를 밟던 김홍균 전 평화교섭본부장도 퇴직했다. 조현동 전 주미공사, 장호진 전 북미국장은 불이익 처분 상태다. 지난 9월 말 인사로 임성남 1차관, 조병제 국립외교원장은 퇴직했다. 그것으로 외교부 수뇌진에서 대미 라인은 소멸 상태다.

그 인사 흐름은 10월 국정감사의 쟁점으로 올랐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렇게 따졌다. “대미 외교가 중요한 시점이라면서, 왜 외교부 내 미국통, 북핵 전문가들을 몽땅 물을 먹이는가.” 강 장관은 “외교부 내 대미 외교와 북핵 외교의 노하우와 경륜은 충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답변은 공허하다. 인사의 특징은 대미 라인과의 단절이다.

인사에는 의외의 대목이 있다. 그것은 조병제의 퇴장이다. 현 정부의 인사 논란은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우대다. 조병제는 문재인 캠프 출신이다. 외교자문단(국민아그레망)의 간사였다. 단장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그 때문에 조병제의 1차관 발탁설이 무성했다. 하지만 실천되지 않았다.

그 인사는 정의용에게도 실망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정의용은 원로급 외교관(72, 외시 5회) 출신이다. 지난달 29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행적은 미묘했다. 비건의 면담 요청 첫 순위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그것은 미국의 청와대 참모들에 대한 판단을 반영한다. 그것으로 외교관 출신의 취약한 입지가 드러난 셈이다.

“외교 정책은 본질적으로 역사관의 문제다. 외교 기술이나 방법의 문제가 아니다.”(김경원 전 주미대사 추모집 『자유주의자의 고뇌와 소망』) 김경원은 생전에 ‘한국의 키신저’라는 별명을 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역사관은 과거와의 결별이다. 그 속에서 박근혜 정부의 윤병세 외교장관의 족적은 적폐다. 이상덕 싱가포르 주재 대사(위안부 문제 담당 동북아국장) 소환은 그 때문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편 가르기에 익숙하다.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데 집요하다. 그 참모들의 주력은 전대협의 586세대다.

강 장관은 비(非)외시·여성이다. 청와대가 강 장관을 내세울 때 언어는 순혈주의 타파다. 하지만 그 이미지로 외교부를 관리할 수 없다. 인사는 어떤 경우에도 만사다. 인사에 무기력한 장관은 유능할 수 없다. 그런 장관에게 전략과 충성심이 결집되지 않는다.

두환 정권 초기의 노신영 시대가 떠오른다. 그는 서슬 퍼런 시절의 외교장관이었다. 5공 정부는 공직 인사 태풍을 일으켰다. 이른바 숙정(肅正)의 퇴출이다. 그것으로 공무원 사회를 재편하려 했다. 외교부에 할당된 숙정 인원은 69명. 외교관의 대량 축출이다.

노신영은 지혜롭게 대응했다. 그는 청와대 참모들부터 설득했다. “직업 외교관 한 명을 기르는 데 엄청난 투자를 했다. 이들의 해임은 결정적인 국가 손실이다.” 그때 외교관들의 역량과 헌신은 뚜렷했다. 하지만 외교부만 예외로 두기는 어려웠다. 그 서류에 대통령 서명이 있었다.

그는 타이밍을 세심하게 모색했다. 1981년 2월 초 전두환의 미국 정상 방문이 끝난 뒤다. 그는 용기를 냈다. 숙정 지시의 재고를 요청했다. 전두환은 난감해했다. 대부분의 부처는 숙정 조치를 끝낸 상태였다. 노신영은 “타부처와의 형평성 문제로 외교관의 숙정을 단행하면 잘못임을 알고도 강행하는 결과가 된다”고 했다. 전두환은 그 건의를 수용했다. 외교부는 거센 숙정 바람을 피했다. 퇴출 대상 69명 중 66명이 살았다. 그는 이렇게 기억한다. 그때 구제된 외교관들은 나중에 외교부의 중심인물이 됐다.”(『노신영 회고록』)

그 무렵 군 출신 낙하산이 쏟아졌다. 노신영은 엄정한 배치 규정을 내놓았다. "어려운 공관에서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전두환은 그 원칙을 인정했다. 그때 임동원 전 국정원장(소장)도 예편했다. 그에게 부임 원칙이 적용됐다. 임동원의 첫 부임지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주재 대사였다. 노신영의 분투는 전설이다. 지금 외교부 풍광에서 그런 지혜와 용기는 어색하다. 현재 4강 주재 대사는 모두 낙하산 출신이다.

무기력은 재생산된다. 지난 8월 외교부는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대법원과 외교부의 재판 거래 의혹 때문이다. 압수물에 외교 비밀문서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소송법 (111조 1항)은 공무상 기밀문서를 예외로 다룬다. 기관장 승낙 없이 압수할 수 없다. 그때 강 장관은 외국에 나가 있었다. 강 장관은 그 조항에 의존하지 않았다. 이의제기는 없었다.

장면은 결기 부족의 평판을 낳았다. 그것은 경멸의 이미지를 확산한다. 깔보임은 지도력의 치명적인 요소다(마키아벨리『군주론』). 경멸에 용기로 대응하지 않으면 더욱 얕잡아 보인다. 외교부는 외부 기관의 무리한 압박에도 침묵한다. 그것이 강경화의 외교부 풍경이다. 반면에 ‘강경화 리스크’는 그가 처한 곤경을 상징한다.

외교의 주요 포스트는 엘리트 코스에서 이탈했다. 도쿄의 주일 대사관, 파리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의 실무 직책도 인기를 잃었다. 그런 풍조는 외교의 전문성을 약화시킨다. 문 대통령의 10월 유럽 순방은 곤혹과 낭패로 마감했다. 그가 내놓은 정상회담 메시지는 ‘대북제제 완화와 비핵화 촉진’이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CVID (완전, 검증 가능,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고수했다.

유럽 국가들은 북한 핵문제에 완강하다. 문 대통령의 설득은 무모한 시도였다. 현지 대사들은 그런 거절 장면을 예측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강행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반도 운전자론’에 대한 과도한 확신 때문인가. 외교 현장과 청와대의 소통 실패 때문인가. 하지만 청와대는 이를 외교 실패로 인정하지 않는다. "기대보다 잘됐다”는 주장이다. 그런 자세는 국제정치의 상식과 어긋난다.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는 "4강에 둘러싸인 한국은 대외정책에서 기본적으로 겸손해야 한다”고 했다.

외교부의 침체 극복 자산은 전문성과 경험이다. 그것으로 청와대 참모들을 압도해야 한다. 역대 외교장관들은 그들만의 방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경험과 배짱, 지혜와 언어로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김대중 정부의 홍순영, 노무현 정부의 반기문, 이명박 정부의 유명환 장관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외교 어젠다를 생산하는 능력이다. 박수길 전 유엔 대사는 "장관은 자기 어젠다를 갖고 다듬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강경화 외교부의 재출발 기점이다.

박보균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