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타개 수순 이견만 확인|국회 대정부질문 「이상평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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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임시국회 대정부 질문이 17일 끝나 상임위활동에 들어갔다.
이번 임시국회는 5공 청산을 둘러싼 특검제의 채택과 최·전 두 전 대통령의 증언여부를 놓고 여야간 시각조정이 안된 상태에서 출발하여 긴장과 대결이 예상됐었다.
그러나 막상 4일간의 대정부질문 기간중 한 두건의 돌출사건으로 인한 일과성의 소란을 제외하곤 이상할 정도로 조용히 넘어갔다.
판에 박힌 의원들의 질문과 지루한 정부측의 답변, 의원들의 잦은 이석으로 의사정족수를 못 채워 채근하는 의장의 호소, 의미 없는 가성의 야유들은 3공이나 5공 시절의 국회와 거의 다름이 없었다.
첨예한 쟁점을 눈앞에 놓고도 국회가 이같이 느슨하게 진행된 것을 두고 종반의 격돌을 예비키 위한 잠복성의 휴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부에서는 중간평가를 둘러싸고 국회해산 등의 얘기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자 지레 몸조심하자고 움츠리는 분위기가 은연중 퍼져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대정부질문기간 중 국회정문 밖에서는 죽창과 화염병이 동원된 대규모 농민시위가 있었는가 하면 잇따른 해직공직자들의 시위까지 겹쳐 국회 안의 가라앉은 분위기와는 퍽 대조적이었다.

<5공 청산 등 시각차>
정치분야질의의 핵심은 5공 청산과 중간평가였다.
여야는 5공 청산이 됐는가의 여부에 대한 시각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였다.
민정당측은 『전직 대통령이 잘못을 시인, 사과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정해남)는 점을 강조하며 『이미 국회특위활동을 통해 비리의 실체가 상당히 드러났고 검찰에 의해 수사가 마무리 됐다』(이치호)면서 과거에 집착하여 국력을 낭비치 말자고 주장했다.
반면 야당측은 『노정권은 애초부터 5공 청산의지가 없었으며 곁으로만 달라진 흉내만 낼뿐 본질적으로 달라진게 없다』(이협·평민), 『검찰수사는 미리 짜여진 각본』(황명수·민주)이라며 5공 청산이 멀었음을 지적했다.
이와 맞물려 있는 특검제와 전·최씨의 증언문제 에서도 여야는 여전히 팽팽한 대립상을 보였다. 두 가지 모두를 반대하고 있는 민정당에 대해 야당의원들은 『전씨가 백일기도에 들어 갔다하나 국회증언에 나서는 것이 천일·만일기도 보다 더 빨리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협)이라며 직접증언을 촉구하고 특검제를 거부할 경우에는 『엄청난 국민적 저항으로 정권의 붕괴가 초래될 것』(이재근·평민)이라고 경고했다.
중간평가에 대해서 민정당측은 종전의 입장대로 시기·방법들은 대통령이 결정할 사항이라고 하면서도 『신임연계가불가피하며 정치권 전반에 대한 총체적 평가가 돼야한다』(이치호)고 중간평가와 정계개편연계론을 들고 나왔다.
이에 대해 야당의원들은 『중간평가에 엉뚱하게 야권을 끌어들이는 것은 후안무치한 음모』로 규정하고 중간평가로 노정권이 퇴진할 경우 「과도거국내각을 구성」(황명수)하거나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보궐선거를 실시」(이재근)한다는 사후처방까지 제시했다.
사회 각 부분에 유행법처럼 파급돼가는 「북방외교」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이를 보는 시각이 『외교사의 새지평을 여는 이정표』(김현욱·민정) 혹은 『국내정치 갈등을 해소키 위한 원교근공의 센세이셔널리즘』(박실·평민)으로 엇갈렸으나 여야 모두 무분별한 접근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비슷했다.
특히 「밀사외교」에 대한 비판도 높았다.
『밀사외교를 벌이는 것은 정부의 독선독주』(김현욱) 『박철언·정주영씨의 공산권방문은 탈법·치외 법권적 행동』(박실)이라는 비판과 함께 『밀사외교가 기존의 한미안보관계에 손상을 주는 것은 아닌가』 『시베리아를 우방인 미국의 신경을 곤두세워가면서까지 개발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이상하·민정)라는 등의 한미관계에 끼칠 역작용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결국 이 문제는 정부측으로부터 『초기단계에서 밀실외교가 불가피했으나 앞으로는 초당적인 협조를 얻어 공개외교를 벌이겠다』(강영훈 총리)는 약속을 받아냈다.

<여야, 밀사외교 비판>
폭력양상의 심각성 때문에 충격을 주었던 여의도농민시위도 자연스럽게 의사당 단상으로 비화되어 농어촌문제가 과거 어느 국화보다 심도 있게 다뤄졌다.
민정당은 이 시위를 『체제전복을 노린 폭력혁명세력들이 선량한 농민을 악용한 시위』라고 규정하고 『정부도 집단행동이 있어야 대책을 강구하는 소극적 자세를 버려라』(이기빈)고 시외한 목과 정부를 동시에 나무랐다.
야당들은 미묘한 입장 때문에 시위성격의 규정은 유보한 채 문제가 된 수세를 포함하여 농정전반에 대한 정부의 소홀함을 따졌다. 그러나 여야가 폭력만은 배제해야 된다는데 의견을 같이 해 민정당이 준비중인 폭력규탄 결의안의 처리여부가 주목된다.
이번 대정부질문의 「월척」은 뭐니뭐니해도 김법환 의원이 터뜨린 이순자씨의 안양임야에 대한 폭로였다. 안양근교에 이순자씨의 땀이 있다는 제보에 따라 4명의 비서와 함께 1주일을 헤맨 끝에 찾아냈다는 이 땅을 놓고 김 의원은 『눈물을 흘려가며 숨겨논 재산이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새로운 재산이 생겨났는가』라며 호통을 쳤다.
이에 대해 강 총리는 『이창석씨 소유의 땅이며 이순자씨는 단지 가등기만 되었을 뿐』이라고 해명했으나 야당을 납득시키기에는 미흡한 채로 끝났다.
이 사건으로 특위정국의 종결은 커녕 일파만파로 번져갈 가능성도 없지 않아 앞으로 계속 정치쟁점이 될 것 같다.
대정부질문동안 야당의원들이 정부측과 말싸움을 건 것은 「노태우혁명론」.
강 총리가 답변 중 6공의 민주화 추진실적을 미화해 「노태우혁명」이라고 찬양한 것이 발단이 되어 야당측에서는 의사진행발언을 얻어 『6·29선언은 국민에게 항복해서 하게된 국민혁명임에도 강 총리가 역사를 왜곡했다』고 들고일어나 결국 해명 발언하는 사태까지 빚었다.

<회기만 까먹는다>
이번 임시국회를 계기로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오던 대정부질문제도의 개선문체가 새삼 재론되고 있다.
국회가 열릴 때마다 각 교섭단체에서 의제별로 수명씩 나서 수일씩 일정을 허비해 가며 꼭 본회의에서 질문을 해야되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스테레오 타이프의 반복된 질문과 형식적인 답변, 그리고 질문인지 연설인지 분간하기 힘든 원고낭독이 되풀이되고 있어 아까운 회기만 까먹고 있다는 비판이 점점 높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아래서 국회활동이 위축되고 언론자유가 제한을 받았을 때에는 본회의 질문을 통한 폭로나 대정부비판이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지만 여소야대의 현 상황에서 그 같은 구습을 그대로 반복해야할 것인지는 한번 여야가 함께 검토해 봄직할 것 같다. <문창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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