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약탈 문화재 반환, 일본 양심세력은 살아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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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47책이 93년 만에 귀환한다. 국보 151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은 일제 강점기인 1913년 초대 총독 데라우치가 일본으로 가져간 대표적 약탈 문화재다. 이 실록이 국권 찬탈의 상징이었던 데다 학술적 가치도 높은 것으로 평가돼 이번 반환은 의미가 크다. 이번 일을 성사시킨 불교계와 환수위의 노력에 아낌없는 격려와 찬사를 보낸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다.

한.일 양국 민간이 주도한 이번 반환은 향후 일본의 약탈 문화재 반환에 귀중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특히 이번 반환은 독도 문제와 교과서 파동,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한.일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이뤄진 것이어서 양국 우호 증진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북관대첩비를 반환했고, 이어 올 2월 후지즈카 교수도 추사 김정희의 유물 2700여 점을 아무 조건 없이 과천시에 기증했다. 이는 지금의 한.일 관계가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망발에서 비롯된 것일 뿐, 아직 일본에 양심세력이 건재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는 7만4000여 점으로 그중 46%인 3만4000여 점이 일본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박물관 등에 공개된 것만 계산한 것이다. 개인 소장까지 합치면 훨씬 많은 유물이 해외, 특히 일본에 있다는 게 정설이다. 이러한 해외 소재 문화재의 반환을 언제까지나 민간에 맡길 수는 없다.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젠 정부가 나서야 한다. 문화재청은 생뚱맞은 역사 바로세우기 사업 대신 약탈 문화재의 반환을 통한 진정한 역사 바로세우기에 노력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