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라이프 트렌드] 아름다운 남자 세상으로 나오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1면

2040 그루답터 

최근 티 날 듯 말 듯 색조 화장을 하는 남성이 많아졌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동 ‘아리따움 라이브 강남점’에서 만난 김대한(28·프리랜서)씨는 ’평소 잡티를 가리기 위해 파운데이션을 즐겨 바른다“고 말했다.

최근 티 날 듯 말 듯 색조 화장을 하는 남성이 많아졌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동 ‘아리따움 라이브 강남점’에서 만난 김대한(28·프리랜서)씨는 ’평소 잡티를 가리기 위해 파운데이션을 즐겨 바른다“고 말했다.

“수염 자국 가려주는 컨실러 좀 추천해주세요.” “자연스러운 붉은색 립스틱은 없나요.” 직원에게 추천 받은 제품을 손등과 입술에 발라보고 색상이 잘 맞는지 제형이 너무 빡빡하진 않은지 꼼꼼히 따진다. 색조 화장에 빠진 남성, 이른바 ‘그루답터’(그루밍+얼리어답터)의 화장품 쇼핑 풍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중·장년까지 그루답터 대열에 합류해 외모 가꾸기에 바쁘다. 남성미와 자신감을 표현하는 도구가 된 ‘남성 메이크업’, 어디까지 진화했는지 살펴봤다.

화장 노하우, 화장품 정보 #여성 못지않은 수준 갖춰 #외모 결점 없애 자신감 UP

#대학생 김규봉(25)씨는 일주일에 약 다섯 번 메이크업을 하고 외출한다. 3년 전 여드름을 가리기 위해 파운데이션을 바른 게 시작이었다. 콤플렉스가 보완되자 자신감이 생겼다. 김씨는 “이젠 화장만으로도 각진 얼굴을 갸름하게 만들 수 있다”며 “아이섀도나 색이 있는 립밤(입술 보호제) 등도 즐겨 사용한다”고 말했다.

화장하는 남자들이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비비크림을 챙겨 바르는 게 화장의 전부이던 ‘병아리 수준’도 넘어섰다. 이들은 파운데이션·컨실러로 피부톤을 정리하고 아이섀도로 또렷한 눈매를 연출한다. 콧대 양옆에 섀도 제품을 발라 음영을 줘 낮은 코를 높아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여성이 하는 건 모두 한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화장의 수준이 높아졌다.

세계 뷰티 시장의 멋쟁이

샤넬의 ‘보이 드 샤넬’,

샤넬의 ‘보이 드 샤넬’,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화장품 사용 후기와 화장 노하우 등도 아낌없이 공유한다. 김규봉씨가 운영하는 남성 뷰티 블로그 ‘쭈뀨쭈뀨한 남성 뷰티’는 3500여 명의 이웃(구독자)이 있다. 동영상 공유 플랫폼 유튜브엔 25만여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남성 뷰티 채널도 있다. 초보 그루답터인 직장인 이동환(30)씨는 “너무 밝은 색상의 파운데이션을 발랐다가 가부키 화장 같다는 놀림을 받았다”며 “피부가 좋아 보이는 효과를 포기하기는 싫어 남성 메이크업 관련 콘텐트를 보고 따라 하며 실력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화장을 통해 외모의 결점을 보완하면서 자신감을 얻는 남성이 많아진 것이다.

남성의 화장에 대한 관심은 제품의 구매로 이어졌다. 시장조사기관 유러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약 1조28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1% 성장했다. 헬스앤뷰티 스토어 올리브영에서도 ‘그루밍’ 관련 제품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3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외모를 가꾸는 데 적극적인 우리나라 남성은 전 세계적으로 ‘잘 꾸미는 멋쟁이’로 통한다. 그렇다 보니 재미있는 트렌드도 생겼다. 굵직한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에서 한국 시장을 남성 뷰티 제품의 시험 무대로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일본 화장품 브랜드 에스케이투(SKII)는 남성용 제품을 국내에 가장 먼저 내놨고, 지난 9월엔 샤넬이 남성용 색조 화장품 ‘보이 드 샤넬’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소개했다.

남성용 색조 화장품 속속

톰 포드 뷰티의 ‘톰 포드 포 맨’

톰 포드 뷰티의 ‘톰 포드 포 맨’

불과 3~4년 전만 해도 화장품 매장에서 남성용 색조 화장품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일찌감치 남성용 화장품 시장에 뛰어든 미국의 화장품 브랜드 톰 포드 뷰티의 ‘톰 포드 포 맨’, 국내 화장품 회사 아모레퍼시픽의 ‘아이오페 맨’ 정도가 출시돼 있었다. 선택의 폭이 좁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용 색조 화장품을 구매하는 남성이 많았다. 하지만 여성용 제품은 남성에게 너무 밝고 묽은 데다 사용하기 복잡하고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화장품 상담학』을 집필한 김홍석 피부과 전문의는 “남성의 피지 분비량은 여성보다 5배가량 많다”며 “여성이 사용하는 묽은 제형의 파운데이션을 바르면 금세 지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화장품 브랜드가 남성용 색조 화장품을 적극적으로 내놓기 시작한 건 최근 그루답터가 늘면서다. 기존에 있던 남성용 색조 라인의 제품군을 강화하거나 아예 새로운 제품 라인을 론칭했다. 이 제품들은 여성용 화장품과 확실히 다르다. 남성용 색조 제품 대부분은 ‘화장한 티가 나지 않는 자연스러움’ ‘땀과 유분에도 잘 지워지지 않는 지속력’ ‘간단한 사용법’ 등의 특징을 강조한다. ‘보이 드 샤넬’의 파운데이션이 대표적이다. 야외 활동을 즐기는 남성을 위해 땀·피지에 강한 ‘폴리머’ 성분을 사용했다. 또 ‘마이크로-메시’라는 기술을 적용해 붓을 사용하지 않고도 손가락만으로 쉽게 바를 수 있도록 했다.

지난 8월 애경산업이 선보인 남성용 화장품 ‘스니키’는 자칭 ‘티 안 나게 잘생겨지는’ 제품이다. ‘스니키’의 립밤은 겉보기엔 평범한 흰색이지만 바를수록 입술이 붉어진다.

미프의 ‘미남크림 세트’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선보인 남성용 색조 화장품.

미프의 ‘미남크림 세트’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선보인 남성용 색조 화장품.

얼굴용 색조 제품뿐 아니라 헤어용 색조 제품도 시장에 나왔다. 새치를 감쪽같이 가려주는 헤어 마스카라, 머리숱이 줄어 듬성해진 공간을 채워줄 헤어 섀도(흑채)까지 다양한 ‘동안 아이템’이 중·장년층의 남심(男心)을 훔치고 있다. 대부분의 제품 포장도 ‘누가 봐도 남성의 것’이라는 느낌이 들 만큼 남성미 넘치게 디자인했다. 색상도 무채색이나 짙은 파란색 계열 위주다.

남성들의 화장은 이제 ‘대세’로 자리 잡았다. 전문가들은 화장이 서툰 남성은 몇 가지 원칙만 알아둬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민율미 한국패션심리연구소장은 “거뭇한 수염 자국을 가리려면 본인의 피부보다 반 톤 어두운 색상을 선택해야 한다”며 “피부에 붉은 기가 많이 도는 우리나라 남성의 경우 잿빛이 나는 파운데이션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글=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동하, 각 업체 제공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