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서 「통화긴축 몸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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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월9일의 통안증권 강제 인수조치와 13일의 은행대출 2조원 축소 지시 등 정부의 물리적인 통화 환수 조치로 금융가가 심한 진통을 겪고있다.
또 주총을 앞둔 기업들이 갑자기 돈줄이 막혀 배당금 지급에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을 보이는 등 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제2금융권 대출 금리가 갑작스런 자금 수요로 12·4%에서 14%로 치솟는 등 금리의 급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은 관계자들도 「비상시가 아니면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조치」라고 평가하고 있는 이번 금융긴축의 뒷 얘기와 여파를 점검해 본다.
대출금 축소액이 할당된 은행들은 14일부터 비상 체제에 돌입, 자금줄을 막느라고 정신이 없을 정도.
H은행, S은행 등의 경우는 은행장이 직접 나서서 지점별 여신 축소현황을 시간마다 보고 받고 있다.
이토록 강력한 창구지도가 재개되리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시은 관계자들은 한은에 대해『도대체 우릴 로봇 취급하느냐』며 노골적인 불평을 털어 놓고있다.
신규 대출은 안 내준다 해도 기간도 되지 않은 대출금을 회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만기가 도래한 대출금도 통상 6개월은 연장되곤 했던 것이 관행이고 보면 이를 막는데도 사사건건 고객들과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번 조치로 은행들의 자금줄이 완전 동결됨에 따라 그 충격파는 당장 기업들의 자금수급 계획을 일그러뜨려 놓고 있다. 은행별 여신규제가 없어진 이후 기업들은 필요한 자금을 그때그때 주거래 은행을 통해 공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자금수급 계획을 다소 느슨하게 짜 놓았으나 갑작스런 자금 동결조치에 따라 곧 시작될 배당금 지급과 임금 협상을 앞두고 난감한 표정.
H은행의 고객인 한 중소기업인은『계획됐던 은행 대출이 막혀 부도를 피할 수 없게 됐다』며『이로 인한 책임은 재무부와 한은이 져야할 것』이라고 성토.
은행에서 돈을 못 빌린 기업들이 단자·보험 등 제2금융권으로 몰려들고 있으나 이쪽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통안증권 매입으로 대출 여력이 거의 바닥이 난 상태이기 때문. 이에 따라 금리 자유화이후 연12·4%선에서 운영되던 A급 기업에 대한 단자사 대출(어음 할인)금리가 최근 14%까지 치솟고 있으며 금융기관간 자금 사정을 나타내는 단자사를 금리도 일주일전 12∼12·5%였던 것이 15일에는 15∼16%까지 급등.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출수요가 없었던 은행 신탁부문도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쇄도하는 바람에 금리가 최고 금리인 15·5%까지 치솟고 있으나 그나마 실제 대출은 거의 안되고 있는 상태다.
증권 쪽도 당국의 통화 긴축이 강화됨에 따라 위축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같은 시중자금의 경색 상황은 통화 환수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가능한 한 많은 자금을 미리 확보하자는 기업들의 자금 가수요 현상까지 유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금융계는 내다보고 있다.
이번 대출금리 회수지시는 지난1월 중 총 통화 증가율(평균 잔액기준)이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87년12월(22·5%)이후 가장 높은 20·2%에 달했다는 사실과 이로 인해 연초부터 아파트 값을 중심으로 물가가 큰 폭으로 뛰어 안정기조를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일이다.
보다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1월말 현재 총 통화 증가율이 21·3%로 평잔 증가율보다 1%포인트 이상 높으며 지난6일 설날을 앞두고 이달 들어 4일까지 정부와 민간부문에서 풀린 돈이 자그만치 1조원을 넘어 10일 현재 총 통화 증가율이 근간에 보기 드문 24%선에 육박했다는 점이다.
은행별로 할당된 대출잔액 축소 규모는 3가지 기준에서 정해졌다고 한은 관계자는 밝혔다. 우선 ①작년 12월5일 금리 자유화조치와 함께 은행별 여신 한도가 철폐된 이후 증가한 여신규모와 ②기업자유 예금 및 기업적금 등 기업관련 예금(일단 양도성 예금으로 판단) 규모, 그리고 ③현재의 총 여신 규모가 그 기준이 됐다는 것.
이 세가지 요소를 파악한 결과 상업은행이 2천8백억원으로 가장 많은 목표액이 배정됐고 한미 은행은 5백억원으로 가장 적었다.
은행선정 기준으로는 우선 7개 시중은행과 시은과 사실상 성격이 같은 외환은행, 그리고 기업대출이 많아 양도 예금이 많다고 판단된 중소기업은행 등 9개 은행이 대상이 됐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은 기업 쪽보다는 일반서민 자금 및 주택자금을 취급한다는 점에서 제외되었으나 지난 5일을 기준, 대출잔액을 더 늘리지 못하도록 규제함으로써 사실상 이들 은행도 대상에 포함된 셈이다.<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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