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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선 제2 김기사 안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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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산업 성장 막는 ‘붉은 깃발’ 규제

경기도 판교 ‘워크앤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박종환 대표. 그는 2010년 김원태·신명진 공동대표와 함께 국민 내비게이션이라는 별칭을 얻은 ‘김기사’를 만든 록앤올을 창업했다. [강정현 기자]

경기도 판교 ‘워크앤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박종환 대표. 그는 2010년 김원태·신명진 공동대표와 함께 국민 내비게이션이라는 별칭을 얻은 ‘김기사’를 만든 록앤올을 창업했다. [강정현 기자]

1999년 친구와 함께 상경해 화장실도 없던 반지하 방에서 지내며 벤처 대박의 꿈을 키웠다. 서울 지리도 모르는 부산 촌놈(?)이었지만 내비게이션이라는 ‘한 우물’만 파며 자신의 사업을 일궜다. 지난 2015년 내비 서비스 ‘김기사’를 카카오에 626억원에 매각, 스타트업 ‘엑시트’(투자금 회수) 신화를 쓴 박종환(46) ‘김기사컴퍼니’ 공동대표의 이야기다.

박종환 김기사컴퍼니 공동대표 #대기업이 인수하면 새 규제 적용 #스타트업 M&A 막혀 해외로 떠나 #아버지 택시기사지만 카풀 찬성 #규제 혁파해야 일자리 늘어나

지금은 판교의 공유 오피스 ‘워크앤올’을 운영하면서, 스타트업의 육성·성장을 돕는 액셀러레이터를 병행하고 있는 김 대표는 지난 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과 같은 규제 환경에서는 제2의 김기사가 나오기 힘들다”며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요즘 스타트업들을 만나보면 ‘일단 해보자’라는 자신감보다는 ‘법적·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먼저 한다”라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나 사업에 대해 일단 불법으로 규정하는 환경에선 스타트업이 창의성을 잃고 스스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본인 역시 스타트업 시절부터 각종 규제 때문에 적잖이 속앓이했다. 2012년 모 부처 장관상으로 내정됐을 때는 실내에서 위치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상이 취소될 뻔도 했다. 카카오가김기사의 기술을 적용해 유료 ‘즉시 배차’ 서비스를 추진했지만 정부·지자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차량공유·카풀 서비스에 대해 허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아버지가 40여년 간 택시 운전대를 잡고 있는 현직 택시 기사다. 그만큼 택시 업계의 반발을 잘 이해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법인 소속 택시기사가 차량공유 플랫폼에서 사업을 하게 되면, 회사에 내는 사납금이 2~3%대 수수료로 대체돼 소득이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며 “호주처럼 서비스당 일정 금액의 부담금을 받고 이를 택시 업계에 지원한다면 개인택시의 반발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바뀌는 시대에 맞춰 중재 역할을 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스타트업의 인수·합병(M&A)이 어려운 한국의 풍토도 기술기반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규제라고 주장했다. 성공적으로 엑시트하는 사례가 많이 나와야 ‘투자→성장→회수→재투자’라는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이 이뤄진다. 하지만 복잡한 세제 관련 규제와 까다로운 기업공개(IPO) 요건, 엑시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이 여전히 M&A 활성화를 막고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이 성장해 대기업에 인수되면, 인력·사업구조를 그대로 유지해도 대기업 계열사로 분류돼 새로운 규제를 받게 된다”며 “자금 여력이 있는 큰 기업에서 나서줘야 M&A가 활성화하는데, 이런 규제 때문에 나서기 힘든 것이 솔직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기사 이후 3년이 넘도록 대형 M&A 사례가 나오지 않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국내 유망 스타트업은 해외로 떠나고 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판교에서 공유 오피스 사업을 시작한 것도 이런 점을 감안했다. 판교는 NHN·넥슨·안랩· 한글과컴퓨터 등 덩치가 큰 정보기술(IT) 기업은 많지만 임대료가 비싼 탓에 스타트업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스타트업들이 대거 판교에 정착해 실리콘밸리처럼 다양한 규모의 IT기업이 공존하는 지역 생태계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대기업-스타트업 간 M&A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후배의 시행착오를 줄여줄 멘토링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며 “눈여겨보고 있는 2~3곳의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있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스타트업의 성장을 막는 규제 혁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창업이 늘고, 이들이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고용하는 인원도 많아진다”며 “정부가 목표하는 대로 고용의 양과 질이 함께 좋아질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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