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소 유즈노사할린스크=최철주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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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달 20일 오후 6시30분 유즈노 사할린스크시 공산당 위원회 집회소에서 연극보다 더 극적이고,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당서기와 조선인의 문답회」가 사할린이 소련 령에 편입된후 최초로 열렸다.
그것은 「고르바초프」당 중앙서기장이 부르짖어온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공개) 및 보다 유연한 민족정책의 진면목을 시험하는 현장이었다.
사할린주 공산당 제1서기「반다르츠크」를 비롯, 당 간부와 3백50여명의 한국 교민들이 참석한 열기 가득한 그 모임에 사회주의 국가에 전혀 생소한「남조선 기자」가 등장해 서슴없이 과감하게 질문에 도전하는 한국 교포들의 모습을 눈에 박아 두었다.
극장처럼 계단식으로 꾸며진 널따란 집회소 연단에 「반다르츠크」제1서기가 나타나자 조선인들은 박수로 맞았다. 주의 당 제1서기가 그들과 최초로 대화를 갖는다는데 모두 흥분해 있었다. 좌석이 모자라 통로가 메워지고 드디어는 출입구까지 관중이 넘쳤다.
그는 말했다. 『이렇게 여러분과 만난 게 처음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알아보고 난 문제가 있으면 이를 해결하면서 우리의 과업을 달성해야 합니다』그는 당이 한글 신문 「레닌의 길로」의 재정을 돕고 해방절(광복절)행사를 지정하며 조선 젊은이들의 군복무에 따른 차별대우를 시정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가 연설하고 있는 도중에 조선인들이 즉석에서 작성한 질문서들이 연단위로 전달되었다.
「벨로모소프」서기가 일어나 『익명으로 된 질문서가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도 우리가 답변해야 합니까』 라고 물었다.
『그렇소.』조선인들은 『와-』하고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그의 질문서 낭독이 시작되었다. 『남조선 기자에 대해 질문하겠다. 이곳에 남조선 기자가 참석했다는데 사실인가』 쥐죽은 듯 조용하던 강당은 순식간에 매우 소란해졌다. 그들은 남조선 기자가 어디 쯤에 앉아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고개를 빼고 둘러보기 시작했다.
「벨로모소프」서기는 자신이 낭독한 질문서에 『그렇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나는 관중의 표정을 담기 위해 플래시를 터뜨렸다. 그 불빛은 남조선 기자의 위치를 공개리에 알려주는 신호가 되었다. TV녹화 중계 카메라가 나를 겨누고 있었다.
50대의 교포가 일어섰다. 『우리와 남조선 사람과의 서신왕래가 늘어나고 일본에서 이산가족이 만나는 것도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제 한국 친척을 찾을 수 있는 인도적인 문제가 강구되어야 하지 않는가』 라며 높은 톤의 러시아어로 웅변했다. 「벨로모소프」서기가 답변했다. 『소-한 간에는 국교가 없으며 그에 대해서는 「셰바르드나제」외상의 성명에도 확실히 나타나 있다. 당신은 사할린에 왜 이산가족회가 없느냐며 매우 아픈 점을 물었다.』
또 다른 사람이 일어섰다. 『당신은 작년 12월 북한 방문 결과에 대해 아까 보고했는데 그건 겉으로만 본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궁색해졌다. 『당신도 북한 실정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는가』 라고 했다. 이어 다른 교포 청년이『북조선에 대한 솔직한 인상을 털어놓고 말하시오』라고 소리쳤다. 모두들 『와』 하고 웃었다.
4O대 교포여성은 『사할린 조선인의 제1세 노인문제를 제기코자 한다. 그분들의 상당수가 올해 돌아가실 것같다. 죽기 전에 조국방문이 가능하도록 할 수 없는가』
「벨로모소프」서기가 다시 나섰다. 『앞으로 구성될 이산가족회에서 한국 가족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본다. 이를 위해 우리는 유엔 헌장에 맞게 모든 국가와 협조할 용의가 있다.』
50대 여성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소-이스라엘 사이에는 국교 관계가 없는데도 가족들이 상호 방문하지 않는가. 』 다시 장내가 뜨거워지고 박수가 일었다.
『유감스럽게도 소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방문이 공식적으로 허가되고 있는지 대부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는 맥없이 답변했다.
「반다르츠크」제1서기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마이크로 향했다. 『몇 해동안 쌓아온 난문제들인가. 그게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가. 우리는 해결을 위해 협력할 것이다. 너무 덤비지 말라』
여러 사람의 숨을 죽이게 하는 질문은 다음에 쏟아졌다. 55세 가량의 장년이었다.
『76년 코르사코프 (사할린주 남쪽 항구)에 거주하는 조선인 몇 가족이 한국에 가고 싶다고 탄원했다가 그 뒤에 모두 종적이 없어졌다. 소문에 따르면 그들이 북한으로 강제송안 되었다고 한다. 사실인가』
사할린주 출입국 사무소장이 마이크 앞에 설 때까지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었다. 『소한 사이에 국교가 없어 그렇게 되었다. 그들은 북조선 적이었다』 『아!』하고 교포들의 입에서 작은 비탄의 소리가 나왔다.
그 사건이 터진지 13년 동안 누구도 입밖에 내지 않았던 의문이 공개석상에서 제기되었고 당 간부는 사실을 인정하는 답변을 했다. 충격과 홍분과 페레스트로이카의 새로운 전개에 대한 기대로 교포들은 그날 밤 늦게까지 잔칫집에서 술을 마셨다.
사할린주 당서기와의 대화에서 모국 방문 문제를 신랄히 추궁하고 당 공회당에서 나오는 교민들. 처음 가진 중요한 행사 탓인지 모두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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