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묻지마 폭행’ 20대 제압했는데…목격자들, 고소당할 뻔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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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폐지줍던 여성 사망 사건 관련 사진. [사진 경남경찰청]

거제 폐지줍던 여성 사망 사건 관련 사진. [사진 경남경찰청]

지난달 4일 오전 2시 6분쯤 경남 거제시 한 크루즈 선착장 인근 길가를 지나던 20대 A씨는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을 봤다. 체구가 큰 남성이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 한 명을 길가에서 끌고 다니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A씨는 친구들과 의논해 남성을 제지하기로 결정했다. 차에서 내려 친구들과 이 남성에게 다가가니 여성은 의식을 잃은 채 하의가 무릎까지 내려온 상태였다.

‘무슨 짓이냐’고 묻는 이들에게 이 남성은 ‘상관 마라’는 식으로 말한 후 자리를 떠나려 했다. A씨와 친구들은 이 남성을 주먹으로 얼굴 등을 몇 차례 때려 제압했다. 이후 이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이 남성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조사결과 피의자 B씨(20)는 거제시의 한 선착장 근처 주차장에서 폐지를 줍던 C씨(58·여)의 머리와 얼굴 부분을 수십 차례에 걸쳐 폭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C씨 얼굴과 복부 등을 주먹과 발로 20여분가량 폭행한 뒤 C씨가 의식을 잃자 도로 주변으로 끌고 다니다 A씨 일행에게 제압당해 체포된 것이다.

병원으로 옮겨진 C씨는 뇌출혈과 다발성 골절 등으로 끝내 목숨을 잃었다.

C씨는 키가 132㎝, 체중 31㎏에 불과할 정도로 왜소한 체격이었던 것에 반해 B씨는 180㎝가 넘는 건장한 체격이었다.

고등학교 때 학교폭력 가해자였던 B씨는 평소 입대에 대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술에 의존했고, 함께 술을 마신 지인들을 폭행하는 습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직인 B씨는 입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는 “술에 취해 왜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으며 그곳을 왜 갔는지도 모르겠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C씨는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슬하에 자녀도 없이 홀로 폐지를 줍는 일로 생계를 꾸리다가 변을 당했다.

경찰은 상해치사 혐의로 B씨를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범행에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 혐의를 살인으로 바꿔 구속기소 했다. 검찰은 피의자가 ‘사람이 죽었을 때’ ‘사람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사람이 죽으면 목이 어떻게’ 등의 문구를 검색해본 점을 미뤄 살인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약자를 골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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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A씨와 친구들은 폭행 혐의로 고소당할 수 있었다. B씨 범행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일부 물리력을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B씨가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말해 실제 고소로 이어지진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목격자 일행이 B씨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물리력이 동원돼 B씨가 이들을 폭행 혐의로 고소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B씨가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말해 그냥 넘어가 목격자들이 처벌받을 일은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인터넷에는 A씨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쓴 댓글도 퍼지고 있다. 이 네티즌은 댓글을 통해 “‘왜 이리 범인을 심하게 때렸냐’라는 말을 하는 파출소 경찰들의 모습을 보니 화가 났다”고 적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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