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음악으론 우리정서 표현에 한계|민족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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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민족음악은 서구음악을 배척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서구음악을 올바로 수용하면 됐지 배척할 필요는 없다. 잘못 수용되었으면 고치면 되는 것이다.
서구음악은 그들의 민족음악이다. 이탈리아 음악은 이탈리아인들의 민족음악이요, 독일음악은 독일인들의 민족음악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컨대 중국이나 인도의 민족문학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민족음악을 찾아듣고 즐겨서 나쁠 것 없듯이 서구의 음악을 즐기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서구음악을 단순히 민족음악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일찍부터 여러 민족의 음악이 활발히 교류되었기 때문에 이른바 「국제적인」음악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예컨대 「모차르트」의 음악은 분명 독일민족의 음악이지만 이탈리아나 영국의 청중들에게도 강한 전파력을 갖는다. 「베토벤」도 그렇고 「베르디」도…. 음악의 이러한 국제성은 「음악은 국제언어」라느니,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는 등의 말들을 만들어 냈다. 이런 말들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별로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서구음악에는 대단히 민족적인 음악과 국제성을 띤 음악들이 있는 것인데, 그 어느 것이든 분명히 그 음악을 생산한 민족의 소유물이며 바로 그 민족의 구성원만이 진정으로 즐길수 있는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문제는 유럽문명이 세계를 침략하면서 그들의 음악을 전세계에 퍼뜨렸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전세계의 음악인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착각은 상당기간 지속되었기 때문에 전세계의 많은 민족이 서구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서구음악을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구음악 자체를 즐길뿐 아니라 서구음악의 방법을 빌어 그들의 생각과 정서를 표현하는데 익숙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서구의 음악이면 이탈리아 음악이건 독일음악이건 가리지 않고 즐기며 그것을 아는 것을 큰「교양」으로 삼는다. 그리고 서구음악의 방법으로 만들어진 대중음악이 판을 친다. 의식있는 음악운동조차도 서구음악의 방법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많다. 북한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현상을 벗어나는 첫걸음은 서구의 음악을 그들의 민족음악으로 보는데 있다. 이탈리아 민중에서 우러나온 음악이 그들의 고급음악을 형성하고, 그것이 유럽의 다른 민족에게 영향을 주면서 독일음악·프랑스음악이 생겨나고, 독일·프랑스민족은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자기들의 고급음악을 만들어 가졌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유럽 여러나라의 음악들이 서로 가까운 음악들이어서 크게 보아 「유럽의 민족음악」이 되었다.
그것을 우리가 가져다가 사용하고 그 방법으로 우리도 우리 음악을 만들수 있다. 그러나 그 음악이 「유일한」음악, 또는 「최고의」음악은 아니라는 것, 그것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는 없다는 한계를 아는데서 우리는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민족음악만이 그 민족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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