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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가 진보 목소리 내자 … 보수는 유튜브 장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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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김현철 경제보좌관,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왼쪽부터)이 17일 ‘11시 50분 청와대입니다’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에 출연해 중국 국빈방문 관련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페이스북]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김현철 경제보좌관,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왼쪽부터)이 17일 ‘11시 50분 청와대입니다’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에 출연해 중국 국빈방문 관련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페이스북]

보혁 진영 간 제3차 플랫폼 전쟁이 막을 열었다. 이전 전장(戰場)이 트위터(1차)·팟캐스트(2차)였다면 이번엔 유튜브가 그 무대다.

트위터·팟캐스트 이어 플랫폼 3차전 #진보 진영이 앞섰던 과거와 달리 #유튜브선 전희경 등 보수가 우위 #야당 지지층 유튜브 활용 급증에 #“여권, 가짜뉴스 규제로 통제 나서”

불을 댕긴 건 6·13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에 도전했다가 성추행 의혹으로 정계를 은퇴한 정봉주 전 의원이다. 정 전 의원은 25일 “팟캐스트는 제가 다 제패했었다”며 “최근 이른바 보수 진영의 개 왕 XXX들이 유튜브를 제패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BJ TV가 유튜브 세계를 점령하기 위해 출범한다”고 밝혔다.

’유튜브 세계를 점령하려고 (BJ TV를) 출범한다“고 입장을 밝힌 정봉주 전 의원. [유튜브 캡쳐]

’유튜브 세계를 점령하려고 (BJ TV를) 출범한다“고 입장을 밝힌 정봉주 전 의원. [유튜브 캡쳐]

정 전 의원은  2011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관련 보도나 나경원 의원 1억원 피부과 등의 의혹 제기로 관심을 모았다.

정 전 의원의 언급처럼 유튜브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보수 우파의 대안 미디어로 주목을 받고 있다. 우파 진영이 한동안 열세였던 플랫폼 경쟁에서 유튜브를 선점한 셈이다. 자유한국당의 공식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의 구독자 수는 2만6782명으로 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 구독자(7850명)보다 3배가량 많다.

또한 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운영하는 ‘전희경과 자유의 힘’은 구독자가 3만3382명,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의 ‘이언주 TV’도 구독자가 2만6383명에 달한다. 반면 민주당 측에선 아직 딱히 유튜브 채널을 활발하게 이용하는 정치인은 없다.

10년 전엔 상황이 정반대였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열린 ‘영등포 프리덤’ 오픈 스튜디오 오프닝에 참석해 있다. 자유한국당은 ‘오른 소리’라는 자체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열린 ‘영등포 프리덤’ 오픈 스튜디오 오프닝에 참석해 있다. 자유한국당은 ‘오른 소리’라는 자체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연합뉴스]

2009년 여의도에 트위터 바람이 불어오자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보다는 민주당에서 이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당시 한나라당 몇몇 의원은 “악플이 너무 심하다”며 트위터 사용을 난감해했다. 이런 흐름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중앙일보가 29일 민주당과 한국당 의원의 트위터 계정을 전수조사한 결과 민주당은 91명, 한국당은 47명이 보유하고 있었다. 민주당은 소속 의원의 71%가 트위터를 이용하는 반면 한국당은 42%만 활용했다.

트위터 인기를 가늠하는 팔로워 숫자도 큰 격차를 보였다. 민주당 의원들의 팔로워 총수는 549만3007명에 달했지만, 한국당 측은 47만4675명에 불과했다. 이를 환산하면 민주당은 의원 1명당 4만2581명, 한국당은 4238명이었다. 두 당의 트위터 팔로워 숫자 차이는 무려 10배였다.

팟캐스트가 2011년부터 유행했을 때는 현역 의원 등 정치인의 직접 참여는 적었고, 대신 외곽 그룹의 활용도가 높았다. 정 전 의원과 방송인 김어준·김용민씨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든 ‘나꼼수’가 대표적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개별 채널을 만드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선거 때 진보 성향의 팟캐스트에 출연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보수 진영이 ‘히트상품’을 내놓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이 각광받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시대 변화와 기존 언론의 한계를 꼽았다.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워낙 정치 이슈에 민감하다 보니 새로운 통신·소통 매개체가 출현할 때마다 이를 정치적 목소리를 유통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며 “정치인들도 기존 언론을 이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가감 없이 소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뉴미디어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상파의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엄태석 서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KBS 등 지상파의 ‘친여·친정부 성향’은 이제 당연시되고 있지 않나”라며 “이에 거부감을 느끼고 비판 보도에 갈증을 느낀 야권 지지층이라면 새로운 플랫폼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엄 교수는 “그래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트위터와 팟캐스트가 진보의 아성이었다면, 현 정부에선 반대로 유튜브가 보수의 진지(陣地)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튜브의 영향력이 확대될수록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힘겨루기도 치열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 문제를 질타한 이래 8일 범정부 대책을 발표하기로 했다가 보류했다. 민주당은 유튜브 등 인터넷 1인 미디어도 방송법 대상에 포함해야 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내놨다. 이와 관련 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방송통신위원회가 가짜뉴스(허위정보)와 관련한 규제의 타당성 연구 결과를 받아보기 전에 ‘범정부 대책’부터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반면 야권은 현 정부의 가짜뉴스 규제와 관련해 “보수층의 유튜브 활용이 급격하게 증대하자, 이를 통제하겠다는 정략적 의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당 박성중 의원은 “과거 나꼼수나 트위터에서 수많은 거짓 정보들이 오갔지만 이를 법으로 규제한 적이 없다”며 “자유로운 여론 생성을 막으려는 국가주의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고용세습 0분, 유치원 10분 … 한국당 “이러니 지상파 안봐”

자유한국당 측은 보수 진영이 유튜브로 대거 이동하게 된 주요 요인을 지상파 3사의 야당 외면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22일 김성태 원내대표는 당 회의에서 “어제 한국당이 ‘국민 기만 가짜일자리 고용세습’ 대국민 규탄 행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지상파 3사(KBS, MBC, SBS)에는 기사 한 줄 안 나갔다”며 “사립유치원 비리 사건은 헤드라인으로 무려 10여분 가까이 (보도가) 이뤄졌다. 이런 불공정한 보도가 또 다른 차별과 불평등, 적폐라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당 측에 따르면 22일 뿐 아니라 19~22일 3일간 KBS·MBC·SBS 등 지상파 3사의 저녁 메인 뉴스에서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비리 보도는 1건에 그쳤다. 여권이 제기한 사립유치원 비리 보도는 12건에 달했다. 반면 같은 기간 검색어 추이를 보여주는 네이버 트렌드에서는 ‘서울교통공사’가 ‘사립유치원’보다 앞섰다.

유성운 기자

유성운·한영익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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