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경쟁팀장이 일본인 … 핵융합 연구 한·일전 막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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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굴리엘모 마르코니가 1901년 세계 최초로 대서양을 건너는 무선 통신 시연을 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굴리엘모 마르코니가 1901년 세계 최초로 대서양을 건너는 무선 통신 시연을 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프린스턴대에서 핵융합을 연구하는 동안 과학기술과 산업의 관계를 깊이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가 목요 학술 토론회를 열었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와 내가 연구했던 프린스턴 플라스마 물리연구소(PPPL)를 오갈 때마다 지났던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라는 전자회사가 영감을 줬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571) #<23>산학협력 롤모델 마르코니 #독일 물리학자 헤르츠, 전파 발견 #마르코니, 무선 상용화에 성공해 #무전기·라디오·TV 개발로 이어져 #인류의 삶 바꾸고 일자리도 제공 #마르코니, 1909년 노벨 물리학상 #산업 업적으로 노벨상 받은 사례 #‘브라운관’의 브라운과 공동 수상

RCA의 고로. [중앙포토]

RCA의 고로. [중앙포토]

당시 주변에서 들으니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장거리 무선통신 상용화를 이룬 이탈리아의 전기 공학자이자 기업인인 굴리엘모 마르코니(1874~1937년)가 1919년 미국에 세웠다. 마르코니는 물리학 연구 업적인 무선통신을 산업으로 키웠다. 독일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1857~1894년)가 1888년 전파를 발견하자 마르코니는 1894년 상용화 연구에 들어갔다. 1901년 대서양을 건너는 무선통신에 성공해 신시대를 열었다.

전파를 발견해 무선통신의 길을 연 독일 물리학자 카를 하인리히 로돌프 헤르츠를 기리는 독일 우표. [위키피디아]

전파를 발견해 무선통신의 길을 연 독일 물리학자 카를 하인리히 로돌프 헤르츠를 기리는 독일 우표. [위키피디아]

헤르츠는 주파수 단위인 ‘헤르츠’에 이름을 남겼지만, 마르코니는 통신기기·라디오·텔레비전 등 전파를 이용하는 숱한 문명의 이기와 거대한 관련 산업을 인류에 선사했다. 마르코니는 수많은 일자리도 제공했다. 과학기술 연구성과가 인류 삶을 바꾼 것은 물론 상용화·산업화로 일자리 만들기로 이어진 이 사례는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무선통신 기술 발전에 기여해 1909년 마르코니와 공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독일 물리학자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 [중앙포토]

무선통신 기술 발전에 기여해 1909년 마르코니와 공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독일 물리학자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 [중앙포토]

마르코니는 무선통신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독일 물리학자 카를 브라운(1850~1918년)과 1909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노벨 과학상은 연구실·실험실뿐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도 나온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브라운은 텔레비전 기술 개발에도 공헌해 텔레비전·컴퓨터 등의 모니터로 사용했던 브라운관이 그의 이름을 땄다. RCA는 라디오·텔레비전·진공관·축음기·음반 등을 생산하다 86년 제너럴 일렉트릭에 흡수됐다.

RCA의 초기 로고. 전 세계를 무선으로 잇는다는 꿈이 엿보인다. [위키피디아]

RCA의 초기 로고. 전 세계를 무선으로 잇는다는 꿈이 엿보인다. [위키피디아]

당시 프린스턴에서 매주 RCA 앞을 지나던 나는 과학기술이야말로 산업과 일자리의 원천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렇게 고등연구소 세미나와 주변 전자회사 역사에도 흥미를 느꼈지만 아무래도 주임무는 PPPL에서의 핵융합 연구였다. 미국 과학의 상징과도 같은 스텔라레이터를 가동해 실험한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감격스럽다. 실험을 기획·실행하는 2개의 연구팀은 이 장치를 하루 16시간 가동했으며 1개의 정비팀은 남은 8시간 동안 실험 준비를 했다. 정비팀엔 경험 많은 돈 그로브 박사와 노련한 기능공들이 일했다.

A팀과 B팀으로 나뉜 2개의 연구팀은 각각 3~4명의 과학자와 연구 기능원으로 구성됐는데 세계 선두를 다투는 것이니만큼 두 팀의 경쟁이 여간 치열한 게 아니었다. 이러한 핵융합 연구의 ‘올림픽 경기’에 미숙하지만 나도 참가했다. 거의 매주 새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됐고 그 결과는 논문으로 작성됐다.

A팀의 주장은 일본 도쿄대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핵융합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요시가와 쇼이지 박사였다. 요시가와는 프린스턴 핵융합 연구의 ‘챔피언’이었다. B팀의 신참인 나는 숙명적으로 그와 경쟁에 나섰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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