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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첨단 KTX가 고운 모래를 꼭 싣고 다니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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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길이 생기면 흔히 모래나 연탄재를 뿌려 미끄러짐을 줄인다. [중앙포토]

빙판길이 생기면 흔히 모래나 연탄재를 뿌려 미끄러짐을 줄인다. [중앙포토]

 한겨울에 눈이 내려 빙판길이 만들어지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모래나 연탄재일 겁니다.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빙판 위에 모래나 연탄재를 뿌리는 건데요. 요즘은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이 적기 때문에 모래가 주로 사용됩니다. 또 얼음과 눈을 녹이기 위해 모래에 염화칼슘을 섞어서 쓰기도 하는데요.

열차, 바퀴와 레일 마찰력으로 운행   

 빙판길에 뿌려진 모래는 보행자의 신발 바닥이나 자동차 바퀴와 마찰을 일으키면서 미끄러짐을 줄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넘어져 다치거나 사고가 나는 걸 어느 정도 막아주곤 하는데요.

 이런 모래는 열차에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기차는 철(鐵)로 만들어진 바퀴와 선로(레일) 사이의 마찰력을 이용해 움직이는 구조인데요. 건조하고 맑은 날에는 자연스럽게 둘 사이에 마찰력이 어느 정도 발생한다고 합니다. 기관차 자체 무게만 해도 수십톤에 달해 선로에 가해지는 압력도 그만큼 크기 때문인데요.

쇠로 된 바퀴와 선로의 마찰력을 이용해 열차는 움직인다. [사진 구글]

쇠로 된 바퀴와 선로의 마찰력을 이용해 열차는 움직인다. [사진 구글]

 하지만 비나 눈이 오는 경우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선로가 눈이나 비에 젖으면 마찰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게 되는데요. 그러면 미끄럼 탓에 바퀴가 헛도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때 해결사로 등장하는 게 바로 '모래'입니다. 고운 모래를 싣고 다니다가 기관차 바퀴 앞의 선로에 뿌리는 겁니다. 이를 '살사장치(撒砂裝置, sanding device)'라고 부르는데요. 말 그대로 압축공기를 이용해 모래를 살포하는 장치입니다.

 눈, 비 올 때 레일 위에 모래 뿌려    

 일반적으로 기관차의 보일러 위나 기관차의 바퀴 부근에 모래상자(sand box)를 설치하고, 운전실의 코크(cock) 조작을 통해 모래를 뿌리는 방식입니다. 평상시는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기차 바퀴가 조금 미끄러진다는 느낌이 들면 기관사가 이 장치를 가동한다고 하네요.

 레일 위에 모래를 뿌리고 기관차 바퀴가 이를 밟고 지나가면 레일 위에는 납작하게 눌러진 모래들로 인해 얇은 막이 형성되는데 이를 통해 마찰력이 증가한다고 합니다.

레일에 모래를 뿌린 뒤 열차가 지나가면 얇은 막이 형성된다. [KBS 화면 캡처]

레일에 모래를 뿌린 뒤 열차가 지나가면 얇은 막이 형성된다. [KBS 화면 캡처]

 살사장치는 눈·비가 올 때뿐 아니라 오르막 선로를 지날 때도 사용한다고 하는데요. 오르막길을 오르려면 아무래도 평지보다는 더 큰 마찰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르막을 오를 때 자칫 바퀴가 헛돌기라도 한다면 큰 사고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살사장치가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는 명확지 않지만 1800년대 기차가 처음 개발됐을 당시부터 미끄러짐 방지를 위해 고안됐을 거라는 게 코레일 산하 철도연구원 조재훈 부장의 설명입니다.

 첨단 KTX에도 모래 뿌리는 장치 부착 

 국내에서는 현재 일반 디젤기관차는 물론 KTX, ITX 새마을 같은 전철에도 살사장치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살사장치를 사용하는 열차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기관차 또는 동력차가 나머지 객차나 화차를 끌고 가는 방식이라는 건데요. 이를 철도 용어로는 '동력집중식'이라고 부릅니다.

KTX는 앞뒤에 있는 동력차가 나머지 객차를 끌고 가는 동력집중식이다. [중앙포토]

KTX는 앞뒤에 있는 동력차가 나머지 객차를 끌고 가는 동력집중식이다. [중앙포토]

 기관차나 동력차의 바퀴에만 동력이 전달되고 나머지 객차·화차의 바퀴는 그저 따라서 구르기만 하는 겁니다. 자동차로 치면 엔진의 동력이 앞바퀴에만 전달되는 '전륜구동('前輪驅動, front wheel drive) 이나 뒷바퀴에만 전해지는 '후륜 구동(後輪驅動, rear wheel drive)'과 유사한 형태입니다.

 이들 방식은 동력이 전달되는 바퀴가 헛돌 경우 운행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한 별도의 장치가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열차에 등장한 것이 살사장치입니다.

KTX의 동력차 바퀴 앞에 설치된 살사장치. [KBS 화면 캡처]

KTX의 동력차 바퀴 앞에 설치된 살사장치. [KBS 화면 캡처]

 여기에 사용하는 모래 굵기는 고속차량이냐 일반차량이냐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요. 고속차량용은 굵기가 0.3~1.0㎜이고, 일반차량용은 이보다 큰 1.2~1.5㎜라고 합니다. 고속차량은 아무래도 속도가 빠르다 보니 진동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보다 고운 모래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지하철에도 이런 장치가 있을까요? 정답은 '아니다.'입니다. 지하철은 열차를 움직이는 방식이 KTX나 디젤기관차와는 다른데요. 지하철에는 별도의 동력차가 없습니다. 조종실과 객실이 바로 붙어있는 구조입니다.

 동력분산된 지하철, 살사장치 없어  

 대신 동력장치들을 여러 객차 아래에 분산 배치해 놓았습니다. 이를 전문용어로 '동력분산식'이라고 하는데요. 동력이 여러 곳에서 발생한다는 의미입니다. 자동차로 치면 바퀴 4개에 모두 동력이 전달돼 회전하는 '사륜구동( 四輪驅動, four wheel drive)'과 비슷한데요.

지하철 차량은 동력분산식으로 힘이 좋아 별도의 살사장치가 필요없다. [중앙포토]

지하철 차량은 동력분산식으로 힘이 좋아 별도의 살사장치가 필요없다. [중앙포토]

 그러다 보니 동력분산식 차량은 동력집중식 열차보다 힘이 훨씬 뛰어납니다. 바퀴 한두개가 미끄러지더라도 나머지 바퀴들이 이를 밀고 갈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살사장치가 필요치 않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시속 400㎞ 이상을 넘어서는 고속열차들은 대부분 동력분산식으로 제작됩니다.

 국내에서 앞으로 여객 수송을 위해 투입될 예정인 시속 250㎞대의 고속차량인 'EMU-250'도 동력분산식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역시 살사장치를 달지 않는다고 하네요.

동력집중식 열차에는 이렇게 모래를 보관하기 위한 모래상자가 설치돼 있다. [사진 구글]

동력집중식 열차에는 이렇게 모래를 보관하기 위한 모래상자가 설치돼 있다. [사진 구글]

 하지만 동력분산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살사장치를 안 다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열차의 전체적인 구동력과 마찰력을 계산해서 살사장치가 별도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설치할 수도 있다고 코레일의 조재훈 부장은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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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이 발달할수록 초기에 도입한 방식은 대부분 도태되기 마련인데요. 하지만 살사장치처럼 열차의 역사와 함께 여전히 활용되는 사례를 보면 새삼 신기함도 느끼게 됩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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