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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2차대전 때 기름절약 위해 활용된 '카풀'...ICT 업고 다시 세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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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서울역 앞에서 '승용차 함께 타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진 서울시]

1993년 서울역 앞에서 '승용차 함께 타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진 서울시]

 요즘 '카풀(Carpool)'을 두고 논란이 많습니다. 카풀 시장에 뛰어들려는 카카오 측과 이를 막으려는 택시업계의 갈등이 상당한데요.

 카풀의 사전적 의미는 '목적지가 동일하거나 같은 방향인 운전자들이 한 대의 승용차에 타고 가는 행위'를 말합니다.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알음알음 이웃끼리, 또는 친구끼리 자동차를 같이 타고 통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을 듯한데요.

 공식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카풀을 장려한 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대표적입니다. 전쟁 물자, 특히 각종 전투 차량에 필요한 휘발유를 확보하기 위해 민간 분야에서의 연료 절약이 필요했는데요.

미국, 2차 대전 때 카풀 적극 장려   

 그래서 등장한 게 카풀 캠페인입니다. 당시 카풀을 장려하기 위해 제작한 포스터가 인상적인데요. 포스터에는 'When you ride ALONE you ride with HITLER!'라는 문구가 들어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카풀 장려 포스터. [사진 구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카풀 장려 포스터. [사진 구글]

 직역하면 '당신이 혼자 차를 몰고 다니는 건 히틀러를 옆에 태우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되는데요. 자동차를 혼자 타면 히틀러 좋은 일만 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차를 혼자 타고 다니는 행위와 히틀러 돕는 일을 동급으로 놓을 정도니 당시 카풀 캠페인이 꽤 절박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카풀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은 건 1970년대 중후반 석유파동 때입니다. 당시 미국 제조업체인 3M과 자동차 회사인 크라이슬러가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최초의 승합차 함께 타기 운동(Van pool)을 조직한 것도 이때라고 하네요.

70년대 석유파동 때 카풀 다시 주목

 미국에서 카풀은 1970년 통근수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4%나 될 정도로 그 역할이 컸습니다. 하지만 80년대를 지나고 현재에 이르면서는 비중이 상당히 많이 떨어졌는데요. 2011년 기준으로 통근 수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7%라고 합니다. 이처럼 출퇴근에서 카풀 비중이 하락한 건 80~90년대 미국의 차량 연료비가 워낙 낮아져 자동차 운영비 부담이 별로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70년대 카풀을 장려하는 미국의 입간판. [사진 구글]

70년대 카풀을 장려하는 미국의 입간판. [사진 구글]

 하지만 미국에서는 카풀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도 추진했는데요.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일부 주에서는 차선이 여러 개인 도로에 HOV(High-Occupancy Vehicle) 차선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버스전용차로 같은 제도로 2인 이상이 탄 차만 다닐 수 있는 전용 차선입니다. 상대적으로 이 차선이 차가 덜 막히자 옆자리에 사람 대신 마네킹을 싣고 다니는 운전자도 있었다고 하네요.

미국에서 카풀 장려를 위해 도입한 HOV 차선. [사진 구글]

미국에서 카풀 장려를 위해 도입한 HOV 차선. [사진 구글]

 미국에 등장한 카풀 중에는 '슬러깅(Slugging)'이라는 형태도 있습니다. 통상적인 카풀이 연료비나 통행료 등 운행 비용을 탑승자들이 나눠내는 것과 달리 슬러깅은  말그대로 무료로 태워주는 건데요. 슬럭(Slug)은 버스를 탈 때 요금 투입구에 진짜 동전 대신 던져 넣는 가짜 동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공짜로 태워주는 카풀 '슬러깅' 등장 

 이 슬러깅은 1975년 워싱턴 D.C에서 시작된 이후 샌프란시스코, 휴스턴 등 교통이 혼잡한 도시로 퍼져 현재도 많이 활용된다고 하는데요. 출근시간대 특정 장소에 모여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를 선착순으로 잡아타는 방식입니다. 혼자 운전하는 사람은 HOV 차선을 이용해 빨리 갈 수 있어서 좋고, 얻어 타는 사람은 공짜라서 좋은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슬러깅은 일반 카풀과 달리 돈을 주고 받지 않는다. [블로그 캡처]

슬러깅은 일반 카풀과 달리 돈을 주고 받지 않는다. [블로그 캡처]

 그런데 공짜인 만큼 이에 요구되는 에티켓이 있습니다. ▶운전자는 줄 서 있는 순서대로 태워야 하고 ▶운전자가 말을 시키지 않는 한 말을 삼가고 ▶차 안에서 음식을 먹거나 흡연해서는 안 되고 ▶돈을 요구하거나 주면 안 된다는 내용 등입니다. 이렇게 생성되고 자리 잡은 카풀 문화가 우버, 리프트 같은 유명 차량 공유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는 언제 카풀이 처음 등장했을까요? 역시나 알음알음 같은 방향의 이웃을 태우고 다니는 일은 전부터 있었겠지만 좀 더 본격화된 건 1990년대입니다. 여기에는 급격하게 늘어난 자동차 수가 한몫했습니다.

90년대 차량 급증에 국내서도 '카풀'

 1980년 52만대에 불과했던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가 90년대 들면서 급격히 증가한 탓에 도로 곳곳에서 교통 정체가 빚어진 건데요. 주요 기업과 아파트 단지 등을 중심으로 카풀과 같은 '승용차 함께 타기 운동'이 도입됐습니다. 당시 서울시에는 카풀 활성화를 위해서 3인 이상 승차한 차에 대해서는 일부 유료도로의 통행료를 면제해주기도 했습니다.

 현행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의 전신인 자동차운수사업법에 출퇴근 시간대에 카풀을 허용하는 조항이 들어간 것도 1994년입니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도 카풀은 통행수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택시업계에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요.

 그러나 풀러스, 럭시, 그리고 이번에 럭시를 인수한 카카오 카풀 등 첨단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ies·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한 카풀앱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자칫 승객을 상당 부분 빼앗길 걸 우려한 택시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한 건데요. 게다가 현행법상 카풀의 허용시간이 '출퇴근 시간'으로 한정된 것도 카풀 시장이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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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업계 주장대로 카카오 같은 대규모 자본이 카풀시장에 뛰어들어 시장을 키우면 분명히 타격이 있을 겁니다. 택시 기사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첨단 ICT 기술을 활용한 차량 공유는 전 세계적 흐름이라 무조건 막을 수만은 없습니다.

 일부 국가에서 시도하는 것처럼 차량공유 사업을 허용하면서도 그 이익의 일정 부분을 택시산업 지원에 쓰는 등의 공생 방안을 연구하고 추진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그러면서 점진적으로 교통 산업의 체질을 개선해가는 작업도 병행돼야 할 텐데요. 그래야만 사회적 갈등을 줄이면서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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