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찬세주 마시고 시루떡 차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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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민속의 날」이 설날로 바뀌고 3일간의 연휴가 돼 옛 설날의 분위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설날부터 보름후인 정월대보름날까지에는 세시풍속과 복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는 많은 민속이 있었다.
설날의 풍속은 우리의 생활규범과 멋을 담고 있고 그중에는 미신적인 것도 있으나 발상이 재미있고 해학적이기까지 하여 버리기 아까운 것이 많다.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민간의 풍속에도 많은 변화가 가해졌다. 우리 전래의 정월민속과 북한의 설날풍습을 알아본다.

<체를 대청에 걸어>섣달 그믐날
설 전날인 섣달그믐날에는 친척 어른이나 이웃 장로를 방문하여 「묵은세배」를 드린다. 1년동안 다하지 못한 도리를 다하고 복스런 새해를 맞자는 뜻이다.
섣달그믐날에는 또 연날리기를 한다. 묵은 해의 악을 연에 실어 멀리 떠나보내자는 소망에서 실을 끊어 연을 날려보내기도 했다.
그믐날밤에는 집집마다 구석구석에 불을 켜놓고 자지않는 풍속도 있어 이를 「수세」라 했다. 묵은해이지만 지켜보내자는 뜻이겠다.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했고 아이들이 잠들면 눈썹에 흰 가루를 발라 놀렸다. 이날 밤에는 악귀를 쫓는 폭죽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날 밤에는 야광이라는 귀신이 어린이 신을 신고 가고 그러면 어린이에게 불길한 일이 생긴다하여 체를 대청에 걸어둔다.
야광이 와서 체의 구멍을 세어보다가 신 신어보기를 잊고 닭이 울면 달아난다고 한다.

<스님이 떡 나눠줘>설날
설날은 원단이라 하여 새해의 첫날이다.
남녀가 다 새옷인 설빔을 입고 세배를 한다. 세주를 마시는데 데우지 않으니 이는 봄이 가까워 왔음을 뜻한다.
설날에는 가묘에 차례를 올린다. 멥쌀이나 찹쌀가루를 팥으로 켜를 깔아 찐 것이 시루떡인데 설날 차례에는 꼭 시루떡을 써야한다.
흰떡 또는 가래떡으로 국을 해먹고 나이 더함을 안다.
옛날에는 승려들이 이날 북을 지고 거리에 들어와 치며 돌아다니는데 이를 법고라 했고 떡 하나를 주고 속인의 떡 두개를 받아갔다.
승려의 떡을 아이에게 먹이면 마마를 넘긴다고 했다.

<정월대보름>
설날부터 보름까지의 놀이로는 윷놀이가 가장 성했다.

<청주로 귀밝이술>
정월대보름은 상원이라 하여 신라때부터 민속이 많았다. 찹쌀에다 대추·밤·기름·꿀을 석어 찐 뒤에 갓을 섞어 먹는 약밥을 했다. 청주를 데우지 않고 먹으면 귀가 밝아지다 하여 이를 귀밝이술이라 하고 이가 단단해지라고 호두나 은행 같은 것을 깨물었다. 황혼이 되면 홰를 가지고 높은 언덕이나 산에 달맞이 간다. 먼저 보는 자가 길하다하여 서로 먼저 보겠다고 애썼다.
호서지방에는 횃불싸움과 줄다리기를 했고 이긴쪽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서울에서는 종각의 종소리를 듣고 「다리 밟기」를 했다.

<콩을 잘라 윷놀이>북한
북한의 설날은 양력1월1일이다. 이틀간 공휴일이고 술·쌀을 배급해 준다. 1958년까지 시골에서는 음력설을 지내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후 음력설은 없어졌다.
세배하고 선물교환하고 떡을 하는 모습은 아직 남아있고 더러는 지금도 성묘를 한다. 차례를 지내는데 제사의 형식은 아니다. 음식을 차리고 향을 피우고 앉아서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이야기를 한다. 이같은 차례도 나이 많은 사람이 있는 집에서만 계속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표면적으로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하지는 않으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제사는 지내지 않는 폭이다.
마을마다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농악이 성행한다.
농악은 단결과 집체성이 있어 장려되고 있다. 명절이나 추수가 끝났을 때 반드시 농악판이 벌어진다.
윷놀이는 성행되고 있다. 콩을 갈라 윷으로 쓰기도 한다.
청년들이 모여 줄다리기도 한다. 그러나 동제 같은 것은 없어졌다.
정월대보름 풍습의 하나인 불꽃놀이는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에서는 우리민속을 ▲집체성 ▲투쟁과 용기고취 등에 중심을 두어 새롭게 구성했다. 놀이는 노동과 연결되며 비생산적인 요소는 제거되었다. 따라서 농장대항 줄다리기·농악놀이 같은 것은 장려되고 있다. <천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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