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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계에 "새 불씨"던진「광주 미문화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해외근무외교관의 안전환경유지에 대해 대외정책상 매우 높은 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있는 미국정부는 주한문화원 피습상황을 심각한 사태로 파악하고 있지만 존폐여부 등에 대한 조치는 민감도와 파급영향 등 때문에 자제하는 유동적 단계다.
「니컬러스·밀리」주한 미공보원부원장이 빈발·격화되는 기습을 이유로 광주문화원의 잠정폐쇄를 검토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지는가 하면 주한미대사관과 미국무성은 폐쇄설을 부인하는 등 엇갈린 반응을 나타내고있는 사실이 곧 미국정부의 고민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찰스·레드먼」국무성대변인은 30일 일일뉴스브리핑에서 미 조치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광주문화원 피습상황을 설명하고 『폐쇄결정은 내린 바 없다』고 말했다. 광주문화원 존폐문제에 관한 최소한 현 단계의 미 공식입장이다.
「레드먼」대변인은 이어 『미국은 광주문화원 시설과 직원에 대한 적절한 보호를 한국당국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인을 한국으로부터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 왔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데모·피습의 우려 또는 정보가 있을 때 미측은 한국당국에 경비강화를 요청하고, 한국측은 준공관이라는 성격 때문에 보호조치를 사전 통보해온게 관례였지만 이같은 의사교환은 비공개적으로 이루어져왔다.
따라서 이번 미정부대변인이 『한국당국의 보호』를 공개적으로 운위한 것은 그들의 시설 및 직원에 대한 물리적 위협사태가 발생한데 대한 미측의 우회적인 항의표시로 해석된다. 아울러 이것은 현재로서는 문화원을 폐쇄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두고 광주 및 한국학생 등의 반미감정이 완화되는 것을 기다려보겠으며 그동안은 한국당국이 경비를 확보해주기를 기대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미국정부는 문화원폐쇄는 바람직한 해결방안이 아니라고 기본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일개시설의 폐쇄가 근본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고 다른 시설에 대한 연쇄 파급효과 등이 우려될 뿐 아니라 반미감정의 악화·확대 등 부정적 측면이 더욱 심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85년5월 60여명의 학생이 서울문화원을 4일간 점거한 사건을 비롯해 서울 미 상공회의소, 부산미문화원 점거 등 미국은 과거에도 이미 수차례 미 시설·직원에 대한 위험사태를 경험했었다.
「카터」행정부와 달리「레이건」행정부는 이같은 사태들과 관련, 매우 조심스러운 행동의 자제를 보여왔다. 예전에 비해 한국내부문제에 대한 미 영향력의 한계를 의식하고, 한국의 국민적 자존심과 자신감의 고양을 느끼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섣부른 반응이 혹시 긴밀한 안보협력분야의 이해까지 저해하는 방향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대민 외교」임무를 내걸고 있는 미문화원은 일반에 대한 시설·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뿐 아니라 공산국가 및 제3세계에서 폭력·테러위협에 직면해 왔고 안전보호가 항상 최대과제로 돼있다. 특히 89회계연도의 국무성 해외공관시설안전보호예산이 3억달러인데 비해 고작 1백20만달러를 배정받고 있는 미문화원으로서는 폭력사태 등으로부터 받는 체감위협을 좀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본국정부의 판단에 앞서 현지하급관리(부원장)가 잠정폐쇄를 발설한데에는 이런 배경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미정부도 시설공개와 인적접촉이 생명인 미문화원의 기능이 시위 등으로 제약을 받고 더구나 시설 및 직원에 대한 피해의 개연성이 확실해질 경우 충분한 사전조치를 취해야할 책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미국정부는 실제로는 아프가니스탄의 「나지불라」대통령정부에 대한 정치적 압력의 표시로 풀이되지만, 일단 안전상황을 이유로 들어 30일 아프가니스탄대사관을 폐쇄했다.
주한미대사관은 31일『광주문화원의 생존방안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 미정부 입장』이라고 밝혔지만 위협의 개연성이 확실해지는 경우에는 안전상황을 이유로 보호조치를 취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미국이 어떤 결정을 내린 것과 상관없이 앞으로의 행동은 광주상황에 좌우된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워싱턴=한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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