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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박용진 대박, 유치원·김일성 겁 안낸 ‘똘끼’가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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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내가 왜 이 프로에 나오게 된 겁니까? 관련 상임위원도 아닌데….”

민주당 금기 깨고 이익집단·북한에 돌직구 … 국민 환호 #이념 아닌 상식 따라 정치해야 민심 얻는다는 순리 확인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가 정점으로 치달은 지난 주말, KBS가 유치원을 주제로 연 토론회에 초청된 여당 의원은 기동민(성북을·초선)이었다. 살기등등한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측 출연자에 맞서 정부·여당을 엄호해야 했던 그의 상임위는 교육위가 아닌 보건복지위였다. 궁금해진 기동민이 PD에게 “왜 나를 불렀냐”고 물었다. “교육위 의원님들을 섭외했지만 전부 고사해 의원님을 부른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여전히 사립유치원은 강하다.

국회에서 유일하게 사립유치원과 싸워 국감스타로 떠오른 박용진(민주·강북을·초선)을 만났다. 그는 유치원 비리를 추적해온 한 방송사가 “교육청 감사 결과 비리가 드러난 사립유치원 명단을 달라”고 했을 때 유일하게 응한 교육위 위원이었다. 이 방송사는 교육위의 다른 의원들에게도 같은 요청을 했지만 “내가 총대를 멜 순 없다. 큰일 난다”는 답만 돌아왔다. 보좌관들부터 기겁을 했다고 한다.

왜 박용진은 달랐을까. 그가 설명한다. “초선 의원이 벌집 무서워 상식을 피해 가면 안 된다는 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시민단체가 날 찾아와 ‘(사립 유치원) 뚜껑 열어보니 개판’이라 했을 때 바로 토론회를 열었고 방송에 자료를 줬다. 그뿐이다.”

“당신 지역구에도 유치원이 많을 텐데 겁 안 나던가”고 물었다. 바로 답이 돌아왔다. “거기서 18년을 정치했다. 2000년 총선부터 출마해 5수만에 의원이 됐다. 뿌린 명함만 수백만장이다. 게다가 난 그곳 유치원 연합회 도움도 받지 않았다. 이익단체들은 대개 현직 의원에게 줄 서는데, 난 금배지 달아본 적 없는 초짜 후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익단체 대신 주민들을 일일이 만나며 한표를 호소했다. 내 지지기반은 그런 풀뿌리 민심이다. 그러니 유치원 연합회가 두렵지 않았다.”

또 궁금한 걸 물었다. “토론회 열 때 동료 의원들이 말리지 않던가?” 그는 피식 웃더니 이렇게 답했다. “(유치원들이) 귀신같이 알고 친한 의원들에게 청을 넣은 모양이더라. 여야 가리지 않고 의원 6~7명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들 이름을 공개해달라고 하자 “그것만은 참아달라”고 했다. “뭐라 하던가”라고 물었다. 이건 답을 해줬다. “‘존경하는 박 의원, 걱정돼 전화했다. 나 박 의원 좋아하는데 괜히 유치원과 척지면 어쩌나 해서다. 잘 협의해서 (토론회를) 해라’ 뭐 이런 얘기였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박용진은 “그런데 토론회가 끝나자 의원들이 싹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잘했다’고 난리더라. 자유한국당 의원들까지 전화를 걸어와 ‘내가 못한 걸 당신이 해줘 고맙다’고 하더라.” 박용진에게 “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도 박 의원 칭찬하던데”라고 전해주자 “그 김에 한국당도 유치원 관련 법 개정은 확실하게 협조해줘야지”라고 했다. 맞다.

박용진이 민주당의 ‘금기’를 깬 건 유치원 비리만이 아니다. 2년 전인 2016년 6월에도 민주당의 큰 금기를 건드려 벌집을 만들었다. 당시 보훈처가 김일성 외삼촌 강진석의 항일 경력을 인정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한 걸 정면 공격한 것이다. 박용진은 국회에 출석한 박승춘 보훈처장에게 일갈했다. “한국전쟁을 일으키고, 지금도 핵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김일성·김정은 일가에 훈장을 준 건 대한민국의 상식과 정체성에 정면 도전한 것이다. 보훈처장 자격이 없으니 사퇴하라. 김일성 일가 서훈은 검토 대상이 될 수 없고 (항일 경력이 있어도) 통일 때까지 유보하라.” 구구절절 맞는 얘기다. 김일성 얘기만 나오면 비판 한마디 못하고 벙어리가 되는 다른 민주당 의원들과는 확 달랐다.

그 결과 박용진은 당 안팎에서 혹독한 비난에 시달렸다. 진보 신문과 단체들은 “민주당 의원이 연좌제에 앞장선다”며 맹공했다. 박용진과 친한 기동민은 “용진이가 그런 화를 당할까 봐 사전에 넌지시 말렸다. 꿈쩍도 안 하더라. 정말 집요한 친구”라고 했다.

박용진에게 “니편 내편 안 가리는 ‘똘끼’가 대박의 비결 같다”고 하니 “상식이 답이다. 상식이 진보를 앞선다”고 답한다. “이번 유치원 사태에서도 내가 가장 심하게 깬 곳이 광주·충남 교육청이다. 둘 다 교육감이 진보 계열이다. 그런데 감사를 너무 무르게 했다. 아예 안 한 곳도 있더라. 내가 워낙 아프게 추궁하니까 그쪽에서 ‘저, 박 의원님 친구분이랑 잘 압니다’며 로비성 전화를 걸어오더라. ‘일만 잘하시면 됩니다’라면서 끊었다.”

이런 박용진도 변할 수 있다. 초선 때 앞뒤 안 가리고 뛰던 의원이 재선·3선이 되면서 이익집단 공세에 넘어가고 진영논리에 빠져 북한을 감싸기 일쑤인 곳이 민주당이다. 박용진도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럴 때마다 ‘요즘 낙으로 들여다본다’는 자신의 휴대전화 액정 창을 되새기기 바란다. 1만~2만원 후원금 입금 정보와 함께 하루 수천건씩 날아들고 있는 민초들의 격려 메시지 말이다. ‘의원님 힘내세요(은솔맘)’ ‘응원합니다. 두려워 마세요. 국민만 보고 가세요(부산 딸바보)’ ‘푼돈이라 이름 못 씁니다. 끝까지 포기 마세요(무명)’….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