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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달라진 게 뭡니까" 문 대통령, 참모 질책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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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차담회에 참석해 국무위원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차담회에 참석해 국무위원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8일 청와대 본관 세종실.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장을 빠져나가는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이 위원장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범정부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보고했다. 한 참석자는 “문 대통령이 보고 내용이 미흡하다며 ‘다시 발표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며 “보고 있는 우리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고 말했다. 결국 이 위원장은 국무회의 직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유관기관과 관련 내용을 설명하기로 했던 브리핑을 연기했다.

“국회 입법 핑계대지 말라” 질타 #경제 부진에 경제부처 지적 많아 #“비서실장 경험 덕 디테일한 지적 #답답한 상황 탓에 직설적” 해석도

최근 들어 문 대통령이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들을 공개석상에서 꾸짖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고 한다. 국무회의 이틀 뒤인 10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이날 회의에선 미세먼지 대책이 논의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김혜애 환경비서관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이 “작년과 뭐가 달라졌습니까?”라고 한마디 했다. 순간 참모들 분위기가 썰렁해졌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5·24 조치와 관련해 “해제를 검토 중”이라고 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고 한다. 강 장관 발언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이 우리 승인 없이는 (대북제재 해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한·미 엇박자 논란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강 장관 발언이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문 대통령이 집권 2년 차에 들어서면서 지시 방식이 보다 명확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정 운영에서 성과가 나지 않는 분야에 대해선 최근 단호한 지시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6·13 지방선거 직후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6월 18일)에서 “공직에 근무하는 사람의 가장 기본이 저는 유능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열흘여 뒤 문 대통령은 규제혁신 점검회의가 예정된 당일 논의 내용을 미리 보고받은 뒤 “답답하다”며 회의를 전격적으로 연기했다.

청와대 측근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문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국회 입법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민생 현안의 경우 참모들이 “국회 입법이 필요한데 법안 통과가 잘 안 된다고 있다”고 보고하면 문 대통령은 “국회는 원래 그런 곳이다. 국회 입법으로 떠넘기지 말고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개정 등을 통한 방안을 찾아 해결해 보라”고 지시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정책실 관계자는 “문 대통령 지적에 수긍한다”면서도 “막상 실무선에서 국회 입법을 우회한 개선책을 시급히 내놓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경제상황 악화와 맞물려 문 대통령의 통계 관련 질문이 잦아지면서 경제 분야 참모진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지난 7월 자영업 비서관을 신설하기에 앞서 청와대 회의에서 중소·소상공인 정책 마련과 관련한 논의가 오갔다고 한다. 당시 문 대통령은 참모진들 답변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안 된다고 판단하자 “우리나라는 자영업자가 많은 상황을 상수로 생각해야 한다”며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또 문 대통령은 “장기적인 흐름과 맞물려 대표성이 있는 통계 숫자들을 잘 설명하라”는 지시도 많다는 전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법조인 출신인 데다 (노무현 정부에서) 비서실장도 해 보고 경험이 많아 디테일한 면을 지적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며 “최근에는 답답한 마음에 좀 더 직설적인 표현으로 참모진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집권 2년 차가 되면서 문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보다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방증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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